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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래 Jan 18. 2023

마라톤

만 원이 바꾼 선택


나는 부잡한 아이였다. 길을 걷다가도, 아무런 이유 없이 냅다 뛰는 아이였다. 셔틀버스 빨리 타겠다고 뛰다 넘어져, 계단에 이마를 찧고 유치원에 결석했던 아이였다. 성인이 되어서는 그렇게 뛰어다니진 않았지만, 집에 있는 것을 좀 쑤셔했다. 추운 겨울에 혼자 동네 뒷산을 오르기도 했고, 잠이 오지 않는 저녁에는  세상이 깜깜해도 산책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덕택인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달리기라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는 운동장 트랙을 뛰었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하천과 공원을 달렸다. 자연스레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졌다. 총 두 번의 10km에 참여해 봤다. 처음에는 10km를 한 번에 뛰어본 적이 없어서 힘겹게 완주했다. 덥고, 배 아프고, 숨이 차서 중간에 멈추어 걸었다. 심지어 신발이 발에 맞지 않았는지 큰 물집도 생겼다. 그래도 새벽 공기의 상쾌함과 참가자들의 에너지에 반해서 한 번 더 뛰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달렸다. 스마트폰의 운동 앱을 통해 기록을 확인하면서, 5km나 10km 거리를 혼자서 달리곤 했다. 더 긴 거리를 릴 생각은 없었다. 기록 단축을 목표로 삼았다. 그것만으로 러닝에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즐거웠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기록 단축은 어려웠다. 체계적인 운동과 노하우 없이는 '이게 내 한계겠구나.' 싶었다. 그 이후에는 건강을 위해 뛴다는 생각으로 무리하지 않고 뛰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강남행 광역버스를 탔다. 서울을 오고 가며, 나는 매번 도로 위에서 한 시간씩을 보내고 있었다. 버스가 답답했다. 창밖에 보이는 도로와 건물이 익숙했다. 문득 올해도 큰 변화 없이 끝나겠구나 싶어 두려웠다. 단조로운 내 삶에 새로운 자극이 없으면, 평생을 비슷하게 살 것만 같았다. 올해가 끝나가기 전에 한 단계 성장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달리기였다.


기록이 정체된 후, 목표 없이 뛰던 나는 거리를 늘려보기로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하프 마라톤을 뛰는 것이었다.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면 이전 최고 기록인 10km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곧장 마라톤 대회를 검색했다. 때마침 두 달 후, 11월에 열리는 대회의 참가 신청을 받고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조금 더 고민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름과 생년월일, 이메일을 빠르게 채우고 나서 참여 코스를 선택하려는 데, '이게 지...?' 10km와 풀코스만 있었다. 유명하고 큰 대회였기 때문에 당연히 하프 코스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10km와 풀코스뿐이었다. 내 달리기 경력을 생각하면 42.195km를 뛰는 건 무리한 도전이었다. 길바닥에 누워서, 경련이 일어난 허벅지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뭐 별거 있겠어?' 하고 신청할까 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호기로운 도전으로 시작해 형편없이 끝났던 과거의 경험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제 실력은 모른 채 열정에 눈이 멀어, 애초에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받을 것 같았다. '그래, 그럼 그냥 10km 신청하자. 기록 단축을 목표로 해보자.'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참가비를 내려고 하는데, 6만 원이었다.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다. 유명 브랜드의 티셔츠와 러닝 용품들을 주는 건 알겠는데, 그렇지 않아도 썩 내키지 않았던 10km 달리기에 6만 원을 쓴다는 게 망설여졌다.



‘10km가 6만 원이면 풀코스는 대체 얼마야?’


통제 거리도 길고, 중간에 간식도 주고, 사은품도 하나 더 주는 풀코스는 10km보다 '고작' 1만 원 비쌌다. 사실 관계는 모르겠지만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10km 참가비로 풀코스 비용을 메꾸는 거 아니야?' 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그 순간부터, 내가 길에 나뒹구는 거나, 발에 물집이 생기는 거, 고통스러운 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았다. 내 참가비가 얼굴 모르는 '선량한' 풀코스 참여자를 위해 쓰이는 상황이 더 싫었다. '그래, 그냥 뛰면서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풀코스로 하자. 내가 왜 아무 이유도 없이 남들 참가비를 보태줘야 하는데...' 그렇게 나는 하프 마라톤도 뛰어본 적 없으면서, 풀코스 마라톤을 신청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뛰다가 큰 사고라도 날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조금씩 준비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렸다. "나 이번에 마라톤 해."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몇 킬로미터를 뛰는지 묻는다. 보통 풀코스를 뛴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때 풀코스를 뛴다고 말하면 반응이 비슷하다. 무척 놀라고, 감탄과 우려를 보낸다. "그 힘든 거를 뛴다고? 괜찮겠어? 대단하네!"


'나 자신과의 싸움' 같이 순수하고 고귀한 도전 정신 같은 건 절대 아니었다. 원래 10km를 뛰려고 했는데, 참가비가 1만 원 밖에 차이 안 나서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풀코스로 바꾼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사람들은 '원래 풀코스를 하려고 했는데, 겸사겸사 1만 원 차이가 났겠지'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들은 마라톤을 한다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거기에 주목해서 의미 부여를 했다. 신체적 한계를 느끼면서도 끝까지 해내는 인간 승리 같은 건 내 관심사가 아니었는데, 뭔가 나를 그런 인물처럼 추켜세워줬다. 남은 모르는 비밀을 나만 아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상황이 우스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라톤이 주는 이미지 덕분에 실상과는 달리 멋진 스토리가 완성됐다. 이 스토리를 잘 포장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무사히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 여파로 일주일 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지만, 내가 갖게 된 이미지를 생각하면, 이거 꽤 남는 장사였다. 1만 원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내 옹졸한 마음 덕분에 마라톤 완주를 한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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