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young

But I still.

by 찬란

나의 어린시절, 벌써 어린시절이라고 표현하기도하는 내 자신과 시간에게 참 무색하지만, 스무살 초반쯤 키즈카페에서 일할 때 어린 꼬꼬마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선생님.... 썩 좋았다. 나도 누구 앞에서 한없이 어린 철부지였음에도, 시공간을 넘나드는 장난꾸러기였음에도. 관건은 젖 더 먹은 인생선배였기에, 젖 떼고 밥 더 먹은 인생 사수였기에 선생님이라 불리는 게 익숙해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꼬꼬마들에게 배움과 재움을 주는 게 나의 사명이자 일거리였지만, 되려 배운 것 또한 참 많다. 아이들과의 눈높이 설정, 깨알 같은 특성과 성향, 교감 방법 등. 나중에 아이를 키우게 될 아빠 입장에서 보면 참 도움이 많이 되었다. 허세 섞인 자신감으로 나는 내 아들을 제갈공명으로, 내 딸을 잔다르크로 만들 수 있다.

(웃음)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나를 보면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다가가기만 해도 도망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인사만 했는데도 아기 문어마냥 달라붙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존댓말 반말을 무자비하게 번갈아 가며 쓴다. 아이들 마다 각자의 색깔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색이 선명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 색깔이 희미해지거나 서로서로 비슷해지는 게 무척 아쉽지만)




어느 날은 마음이 따뜻한 아이를 만났는데, 4살 된 여자아이, 말은 서툴지만 작고 귀여운 지금도 이름이 기억나는 주빈이.

그날 나는 피곤함에 습관적으로 눈을 자꾸 비벼댔다. 눈이 빨개졌나 보다. 그것을 본 주빈이가 옹알대며 내게 물었다.

"선생님 아파요?"

순수하게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예쁘고 귀여웠다.
그 순수함에 장난스레 받아쳤다.

"응. 조금 아파"


"선생님 울어?"

갑자기 주빈의 반말. 하기사 이제 막 말문이 트인 네살배기 어린아이가 반말 존댓말의 개념이 있을까마는, 어땟든.


오랜 시간 우리네 친구들에게 기가 빨려있던 터라 사실 순수함이고 나발이고 머릿속으로 파박파박 계산을 때렸다.

"아니야, 잠깐 혼자 있고 싶어"

그 말에 주빈이는 말없이 어디론가 낼름 가버리더니 무언가를 손에 쥐고 다시 돌아왔다, 그러고선 장난감 약병을 냉큼 건네더니 '이거 먹어'라고 말했다.


웃음이 나는걸 애써 참았다.

먹는 시늉을 한 뒤 한쪽 눈만 찡그리며 '쓰네'라고 말했다.


주빈이는 흐르지도 않았던 내 눈가를 손으로 닦아주며 나를 혼냈다.


"뚝!"

(아빠라기보단 삼촌미소:)

웃음이 났다.주빈이도 기분이 좋은지 같이 웃었다.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엔 거리감도 거리낌도 없다. 이렇게.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라는 계산적인 생각을 할 필요도, 직장 상사에게나 할 법한 '예예~ 그럼요~! ' 천편일률적인 대답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 순수함에 물 흐르는 대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간만에 새삼 상기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누군가는 뱉어내 '그러한 현실에 현재를 살고 몸 담고 있으니, 때 묻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것이니 어쩌겠니' 하더라도 나는 그와 같이 자위하고 싶지는 않다. 세월에 의한, 덧대어진 혹은 긁어내야 했던 본연의 색이 진히 바랬지만서도 생각을 굳혀 더 이상 순수함은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라고 얘기하고 싶진 않다.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나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처럼 소리 나게 여행할 것이다. 그 순수함과 열정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어 나의 이 무거울지라도 벗 삼아 함께 갈 것이다.


찌든 삶에 '피죤' 필요하듯,

다시 세탁이 필요할 때 이지 싶다.


그게 그리 어렵진 않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