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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Oct 14. 2017

#2 소청도 여행기

뜻밖의 선물


첫 번째 소청도 여행기에 이어 마지막 이야기


우리는 대합실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민박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빈 방이 있었고,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가져온 짐들을 풀며 우리는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일단 비는 그쳤으니 나가서 구경을 하기로 했다. 먼저 우리는 소청도 등대를 가보기로 했다. 

5년 전 군 복무를 할 때 가장 가기 싫었던 곳이 등대였다. 그때 당시 등대를 가야만 하는 이유는, 벌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완전무장을 결속해 짊어지고 도보로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게다가 오르막길이 대부분이었고, 경사가 가파르다. 

5년 후 다시 찾아본 등대는 다른 의미의 등대였다. 물론 그곳까지 가는 길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고 내리막을 내려가는 고행의 길이었다. 삼십 분을 계속해서 오르막을 오를 때, 뒤에서 자동차 소리가 났다. 그들이 우리를 태워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뒤를 돌아봤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과 힘든 내색을 보이며 우리는 갓길로 비켜났다. 차가 우리 옆에 다다를 때쯤 속도를 줄이더니, 

"우리도 낚시하러 이쪽으로 가니 가다가 내려줄게요"  

우리는 냉큼 짐 싣는 칸에 올라탔다. 갈림길에서 우리는 내렸고, 다시 두 다리에 의지해야 했다. 

바람은 세차게 불어댔다. 바람에 흔들려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나뭇잎들이 우리를 안내하는 듯했다. 


저 멀리 우뚝 솟은 등대가 보였다. 바다에서 길을 잃는 배도 그러했을까. 높이 솟은 등대를 보며 우리는 따라갔다. 소청도 등대는 섬 서쪽 끝 83m 고지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1908년)로 설치됐다. 점등 당시의 등명기가 지금도 광채를 발하며 백 년 동안 쉬지 않고 돌고 있다. 그 밝기가 촛불 15만 개를 동시에 켠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서북해 일대와 함께 중국 산둥반도, 만주 대련 지방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등대에서 바라본 바다는 가히 절경이었다. 흐렸던 날씨는 점점 개고 있었다. 잔뜩 짙은 구름 사이로 햇빛이 통과되어 바다의 어느 한 지점만을 비추는 모습은 신비하게 느껴졌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섬은 아직 자연의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우리는 부랴부랴 일어나 민박집을 나섰다. 또 하나의 관광지인 '분바위'를 보기 위함이었다.  

여기도 소청도 등대와 마찬가지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 길은 모두 아스팔트로 포장이 돼있어 불편하지 않지만, 기어가는 수준의 오르막은 끔찍하다. 바다의 차가움이 몸속에 느껴져 으슬으슬 춥지만, 오르막길은 옷을 하나씩 벗게 만들었다. 또한 이따금씩 불어오는 해풍이 청량감을 가져다주었다.



분바위는 바위가 마치 하얗게 분칠을 해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두운 밤 달빛에 비친 분바위를 보고 길을 찾을 정도로 밝다고 한다. 정식 명칭으로는 스트로마톨라이트이다. 바다나 호수 등에 서식하는 남조류나 남조박테리아 등의 군체들이 만든 엽증리가 잘 발달한 생퇴적 구조를 갖는 화석이며, 일종의 석회암이다. 특히 고생대 이전인 선카브리아누대의 고환경과 생명의 탄생 기원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학술적, 교육적 가치를 갖고 있다. 그래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파도는 쉼 없이 들이쳤다. 바위는 파도를 맞으며 장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세월 동안 바위는 파도의 의해 깎이고, 또 깎이며 자신을 변화시켰다. 하얀 파도가 하얀 바위에 들이치는 부분은 하얀 색깔이 지워지며 본연의 바위 색깔로 돌아갔다. 전망대에서 직접 내려와서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있다.

 

전망대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이 전망대에서는 하늘과 바다, 바위와 나무 들을 모두 조망할 수 있고, 선선한 바람도 만끽할 수 있다. 잠시 정자 바닥에 앉아 우리는 눈을 감았다. 멀리서 들려와 소심하게 느껴지는 파도소리, 우리의 머리칼을 수시로 좌우할 것 없이 넘겨버리는 바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연과 사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숨 막히는 높은 건물 숲과 밤만 되면 번쩍번쩍한 간판, 시끄러운 음악소리, 길거리의 각종 쓰레기와 악취 들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3박을 했다. 10월 1일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뱃길이 끊겼다. 10월 4일이 돼서야 통제가 풀렸고, 배들은 정상 운항되었다. 10월 2일부터 바로 옆에 있는 섬인 백령도로 넘어갈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지만, 오히려 우리에게는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 여행은, 어쩌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계획대로만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번 여행은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일정대로 되지 않아도 그 속에서 재미를 찾고, 여행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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