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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Dec 03. 2017

이기적인 부모님

이제는 그래도 돼요

어머니는 스무 살, 아버지는 스물 여섯이었다. 내 위로 3살 터울의 형을  낳고, 그 뒤 나를 낳았다. 부모님으로써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지금의 부모님은 이야기한다. 부모님은 소위 <한창 놀 나이>에 남자 아이 둘을 낳아 젊음을 포기하고 육아에 매진했다. 아버지는 밥벌이를 위해 지금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따뜻한 밥을 가족에게 먹이기 위해 아버지는 얼마나 고단한 삶을 보냈던가. 또 어머니는 우는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집을 청소하고, '집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며 얼마나 그 말을 되뇌었던가. 지금의 작아진 부모님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의 삶과 정반대로 살았다.


내 몸집은 어느새 부모님보다 두세 배는 커진, 스무 살에 기대를 품고 대학 캠퍼스에 발을 들였다. 대학 1학년 때의 학점은 야구계의 전설로 남아있는 <선동열 방어율>과 비슷했다. 그리곤 군 입대. 전역 후에는 스스로 책임감을 키우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며, 나도 철이 들었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해서 대학 졸업 후에는 독립하여 스스로의 삶을 살고자 다짐했다.  혼자 생계를 꾸릴 능력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독립 후 부모님에게 손 벌리고 살지마, 라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지방에서 서울로 직장을 구하고 방을 잡아 생활한지, 2년이 됐다.


네 아빠 담석제거수술했다.


나는 그때 직장에서 업무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아니, 카카오톡의 쓰여진 문장을 보았다. 5년 전부터 담석이 조그만하게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도 커져서 수술했지. 그거 때문에 소화도 안되고 힘들었나봐, 라는 어머니의 말에, 그동안 <가장으로써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아침 일찍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저녁 때면 작업복에 손톱으로 긁어서 털어내야 없어질 굳은 진흙을 묻혀오는 아버지의 그 날의 일상에 대해 상상, 해보았다. 현관문에서 털고 좀 들어와, 라는 어머니의 핀잔에 다시 신발을 신고 털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나는 신경쓰지말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건강 잘 챙겨.


아버지는 힘을 주어 또박또박,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강인했던, 아버지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밥을 못먹어서 그렇다는, 아버지의 변명에 나는 수긍하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육인실의 병실에서 쪽잠을 청하며 아버지를 간호했다고 한다. 낯선 곳에서 잠을 한숨도 못자서 여행가는 것도 싫어하는 어머니를 생각했고, 언제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곱씹어보았다.

여행을 가시라고 일정을 계획하고 비행기표를 구매하려 해도 부모님은


서울생활 만만치 않아. 네 생활에나 보태 써, 라며 완강하게 거부하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 더 만만치 않았다. 부모님은 지금의 나일 때, 그야말로 모든 걸 포기하고 형과 나를 뒷바라지만 했다. 해서 부모님이 노는 방법을 모르거나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아직도 부모님의 뒷바라지는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부모님의 생활은 여전히, <자식>에게 쏠려 있다. 그것이 아빠엄마의 숙명이겠지만,

이제는 부모님이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한다.


이제는 그래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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