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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Dec 24. 2017

Pray for

내 고향 제천

엄마, 괜찮아? 


를 내뱉기까지, 통화연결음은 너무 길게 느껴졌다. 지난 12월 21일 오후 5시 30분. 퇴근을 앞두고 휴대폰의 진동이 여러 번 울려, 댔다. 또 단체 채팅방에서 친구들의 수다가 시작됐나, 싶었다. 서류를 정리하고 채팅을 확인했다. 시꺼먼 연기에 휩싸인 건물과 뛰어내리는 사람... 제천에 있는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과 영상들을 보며, 나는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계속해서 상황 설명을 했다. 익숙한 동네인 충청북도 제천 하소동에서 


불이 났다


는 것이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내가 대학교까지 다니던, 내 고향에서 저렇게 큰 불이 났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천에 계시는 엄마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뭔 일이냐, 며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우리 집은 불이 난 하소동과는 거리가 있는 다른 동네였다. 나는 계속해서 인터넷으로 화재 현장의 소식을 확인하고, 확인했다.


충청북도 제천은 


행정구역 상 시(市)다. 인구는 약 14만 명의 작은 동네이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에 이곳으로 이사와 대학까지 졸업했다. 거의 고향이라고 할 만큼 추억이 많은 곳이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제천의 인적 네트워크는 좁다. 걔가 그렇대, 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퍼진다. 전 여자 친구가 새로운 남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알고 보니 내 친한 친구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시내라고 불리는 번화가가 있지만, 번화가라고 부르기 무색할 만큼 작다. 한 바퀴 돌며 다 구경하는데 30분이면 족하다. 시내에서, 버스에서, 술집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런 작은 동네에서 


큰 화재가 났다. 9층 건물로 된 스포츠센터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던 <아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화마(火魔)는 스물아홉 명의 목숨을 단숨에 집어삼켰고, 삼십 여 명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혔다. 필로티 구조로 된 건물 주차장에서 불길이 시작돼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뒤덮었다. 건물 외벽이 '드라이비트'로 돼 있어 화재를 더 키웠다. 특히 2층 여성 사우나실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초 신고를 접수받은 소방당국은 빠르게 화재 현장으로 갔지만,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사다리차는 진입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민간인 A 씨가 개인 사다리차를 통해 <아는 사람> 세 명을 구해냈다. 사다리차는 우회해 겨우 현장에 도착해서 사다리를 폈지만, 펴지지가 않았다. 건물 안에는 비상구가 있었지만 전혀 비상시에 탈출할 수 있는 입구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스프링클러 또한 작동하지 않았다, 고 각종 뉴스에서 소식을 전해주었다.


불길이 치솟는 상황에서, 건물 안에 갇혀 자신의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며,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아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제천은 현재 슬픔 속에 잠겨 있다. 연말을 맞아 각종 행사를 계획한 것을 모두 전면 취소하고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천을 떠나 서울과 경기도로 떠나온 내 마음은 무겁다. 멀리서나마 그 아픔과 슬픔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일상으로의 회복이


중요하다.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미비했던 점을 보완하고, 사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달래고 정부 차원에서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우리 국민은, 제천 시민은,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활기찬 도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스물아홉 명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부상자분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


모두에게 고개 숙여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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