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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Jun 13. 2021

엄마가 드시는 밥은 누가 차려줬을까?

그러니까 독립을 한지 몇개월 되지도 않았을 때, 밥을 해먹는 것도 문제지만 치우는 것도 문제였다. 지방 소도시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서울로 잡았을 때다. 밥은 '밥솥'이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아주 구시대적인 사고 방식이 내 머릿속에 심어져 있을 정도로 엄마는 집안일을 척척 기계가 해치우는 것처럼 했다. 그러나 혼자 살게 되면서 밥은 '내'가 하고 청소도 '내'가 하며, 빨래도 '내'가 해야 함을 몸소 깨달았을 때 엄마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위대함과 경외심도 잠시, 밥은 배달음식으로 채워넣었다. 옷을 입고 나가 장을 보는 번거로움과 재료를 씻고 준비하는 수고로움, 간을 맞추며 입맛에 맞게 완성하는 정성을 치워버리고 단 1분만에 배달 어플을 통해 끼니를 해결하기 일쑤였다. 다 먹은 다음 뜨거운 물로 그릇을 불리고 세제를 수세미에 충분히 묻혀 닦아내는 귀찮음 또한 경험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언제 한번은 배달음식을 자주 먹는 것을 엄마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나보고 언제 집에 오냐며 시간 내서 오라고 했었다. 집 계단으로 올라가는 통로에서부터 음식 냄새가 났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반찬을 차렸다. 그것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구성돼있었다. 그때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한여름이었는데, 엄마는 무더운 날에 아들을 위하여 그렇게 음식을 차렸던 것이다. 염치없이 배는 고파서 허겁지겁 밥을 먹다가 엄마를 봤는데, 엄마는 먹는둥 마는둥 하셨다. 음식을 준비하다가 냄새에 질려서 못먹는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그렇게 가족의 밥을 차리기만 하고 정작 본인은 잘 드시지 못했던 것이다. 


주말 내내 간만에 집밥을 먹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려고 짐을 싸고 있었다. 내 가방 옆에 왠 종이가방이 놓여 있었는데 보니까 어느새 엄마가 반찬을 바리바리 싸서 넣어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진미채, 장조림이 반찬통에 가득 들어 있었다. 독립을 해도 여전히 나는 엄마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구나. 다 컸다고 자부하고 살았지만 엄마 눈에는 아직 내가 어리기만 한가보다,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종이가방을 꼭 들고 서울로 오는 버스를 탔다. 좌석에 앉아서 종이가방을 꼭 안고 있었는데 반찬통의 온기 때문에 종이가방도 따뜻했다. 엄마는 나에게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이 더 먹어봐. 이젠 남이 해주는 게 더 맛있어."

엄마는 예전부터 이 말을 버릇처럼 하셨는데, 내가 마음 먹고 엄마 생신 때 미역국과 잡채를 해주었다. 미역을 불려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조차 못할 만큼 요똥이었던 내가 미역국을 한솥 끓여냈다. 당연히 그날도 미역은 물에 불리지 않고 했다. 잡채에 들어가는 당근, 양파 등도 얇고 길게 썰어야 하지만 칼질이 서툴렀던 나는 삐뚤빼뚤한 것도 모자라 굵직굵직하게 썰어 '이거 칼질 제대로 한건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또 잡채용 고기를 따로 판매하고 있는지도 몰라서 그냥 소고기를 사와서 굽고 했었다. 시원한 가을이었는데 한여름처럼 땀이 한바가지 쏟아낼 때쯤 요리가 끝났다. 엄마는 내가 요리할 떄 편히 앉아 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내 옆에 와서 거들지도 못하는 어쩡정한 분위기를 연출하셨다. 걱정 반 두려움 반 설렘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으로 엄마는 내 음식을 드셨다. 맛없으면 맛없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아무 말 없이 뚝딱 해치웠다. 마치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준 밥을 내가 정신없이 먹은 것처럼. 


아마 내가 차린 음식은 냉정하게 맛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다른사람이 온전히 해준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뒤 설거지까지 내가 완벽히 마무리했을 때 뿌듯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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