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루카>
*자세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 보신 분은 먼저 영화를 보시고 읽으면 좋겠습니다.
루카
감독 엔리코 카사로사
월트 디즈니 컴퍼니
픽사의 24번째 작품 <루카>는 여러모로 기대감이 컸다. 이전 작품인 <소울>이 워낙 작품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루카>의 주된 내용은 13살 소년의 성장 스토리다.
영화 첫 도입부부터 배를 젓는 마을 주민이 '바다 괴물'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한다. 요즘 들어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는 건 모두 '바다 괴물' 때문이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광활한 바닷속으로 배경이 옮겨진다. 그곳엔 주인공 '루카'와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물고기+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는 종족이다. 어렸을 적 한 번쯤 읽어봤을 인어공주가 떠오른다. 주인공 '루카'는 다른 물고기들을 훈련시키며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의 엄마는 절대 육지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육지에는 '육지 괴물'이 살고 있으므로 그들이 우리를 잡아먹어버린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한다. '루카'는 13살 소년인데 한창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을 나이다. 부모님 몰래 바다 밖으로 나가려고 마음을 품지만 엄마 말을 잘 듣는 '루카'는 몇 번이나 그 유혹을 참아낸다.
그렇게 유혹을 견디고 있는 와중에 다시 육지로 올라가려는 마음이 들어서 육지에 다 달았을 때, 밖에서 또 다른 소년이 '루카'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깥에 있던 소년은 '알베르토'로 루카보다는 형이다. 그도 루카처럼 바다 괴물인데 무슨 연유에선지 해안가에 있는 무너져 내릴 듯한 성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그렇게 루카는 알베르토의 유혹에 못 이겨 물 밖으로 나오고 인간의 모습을 갖춘 형태로 '변신'한다. 그러나 평생을 물에서 지내왔던 루카는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고 걷지도 못한다. 그런 루카를 바라보던 알베르토는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준다. 먼저 몸을 단계적으로 세우고, 넘어질 것 같으면 발을 앞으로 내딛으라고 말한다. 루카는 이 친절한 '배움'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더 갖추게 된다. 그러나 루카와 알베르토는 본래 태어나기를 물고기로 태어났으므로 물이 닿으면 '바다 괴물'의 모습으로 다시 변신하게 된다.
알베르토가 지내는 공간에는 다양한 인간들의 물건이 가득하다. 그중 루카의 눈에 띄었던 건 벽에 붙어 있던 한 장의 사진이다. 바로 이탈리아의 오토바이 브랜드인 '베스파'다. 알베르토는 이것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이면 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그 말에 루카는 베스파를 타고 날아다니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베스파를 어떻게 사야 할지,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는 둘 다 모른다. 그래서 루카는 알베르토가 지내는 공간에 있는 자재들로 베스파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 말에 알베르토는 호응을 하고 나무로 뚝딱뚝딱 만들지만 그것은 아이들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 우정을 쌓고, 결국 베스파를 찾으러 인간들이 모여 사는 마을인 포르토 로소(porto rosso)로 헤엄쳐 가게 된다. 그곳에는 해맑은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사는 동네로 따뜻한 분위기를 띄고 있는 마을이다. 그러나 마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바다 괴물'이 보이면 죽이려고 항시 대기하고 있고, 사진이나 그림에서도 물고기에 칼이 꽂혀 있는 등 루카의 눈에는 무섭기만 하다. 그렇게 루카와 알베르토는 마을에 진입하고 돌아다니던 중 악당인 '에르콜레'를 만나게 된다. 에르콜레는 루카와 알베르토가 그토록 찾던 베스파를 타고 등장한다. 하지만 이 에르콜레는 악당답게 루카와 알베르토를 괴롭힌다. 그러다 '줄리아'라는 소녀가 등장하여 그들을 구해준다. 줄리아는 자신을 '아싸'라고 소개하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낸다고 한다. 줄리아는 루카와 알베르토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아빠에게 소개도 시켜주고 재워주는 호의를 베푼다. 또 줄리아는 루카에게 우주와 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루카는 그런 이야기에 매혹되어 더욱 성장하고 배움의 욕구를 느낀다.
하지만 여기서 루카와 줄리아는 더욱 가까워지는 것처럼 알베르토는 느낀다. 질투 비슷한 감정이 든 알베르토는 조금씩 엇나가려고 한다. 결국 알베르토는 줄리아 앞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자신이 바다 괴물이라는 것을 밝히게 된다. 그것을 본 줄리아는 놀라고, 악당 '에르콜레'는 작살을 들고 알베르토를 잡으려고 한다. 더욱 알베르토로 하여금 상처를 준 행동은 믿고 우정을 나누던 루카다. 본인도 바다 괴물이지만 인간의 삶의 재미를 느꼈던 터라 알베르토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어! 바다 괴물이다!" 하고 소리친다. 그것을 본 알베르토는 바닷속으로 헤엄쳐 도망가게 된다.
한편, 이 마을에서는 여름이면 철인 3종 경기를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답게 한 가지 종목은 '파스타 먹기'로 바꾸고, 자전거 타기, 수영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 포르토 로소 컵이라고 불리는 이 경기에서 악당인 에르콜레가 매년 우승을 해서 많은 상금을 탔다. 에르콜레가 거느리고 다니는 2명과 함께 매년 참가를 했고, 줄리아는 아싸답게 항상 혼자 참가했다. 그러나 루카와 알베르토는 베스파를 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그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루카는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수영할 때는 철로 된 갑옷 같은 것을 입고 걸어서 반환점을 돌고 온다. 그리고 파스타를 제일 먼저 먹고 마지막 자전거에 올라탄다. 줄리아를 놀리며 올라가는 에르콜레를 순식간에 제치고 루카는 올라간다. 하지만 날씨가 급변하여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한 방울 한 방울 몸에 맞자 루카는 물고기로 변해가던 중 어쩔 수 없이 처마 밑으로 몸을 피한다. 루카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와중에 저 멀리서 알베르토가 큰 우산을 쓰고 루카에게 뛰어온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우산을 놓쳐 비를 맞게 된 알베르토는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정체를 들키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바다 괴물이 된 알베르토를 잡기 위해 둘러싸고 그물을 던져 그를 포획한다. 그것을 본 루카는 여지없이 자전거를 타고 알베르토를 구출한다. 그 과정에서 루카도 비를 맞아 바다 괴물로 변신해 마을 사람들에게 정체가 탈로 난다.
그렇게 루카와 알베르토는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다 결국 넘어졌고,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 싸이게 된다. 넘어진 장소가 공교롭게 결승선을 통과한 지점이었고, 이때 줄리아의 아빠가 루카와 알베르토가 우승했다고 손을 들어준다. 악당 에르콜레가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바다 괴물인데 어떻게 사람들의 경기에 우승을 하냐는 말에 줄리아의 아빠는 "루카는 루카고, 알베르토는 알베르토"라며 에르콜레의 외침에 일갈한다.
13살 소년 루카의 성장 스토리가 주된 플롯처럼 보이지만, 더 중요하게 숨겨놓은 플롯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다. 맨 처음 소개했듯 바다에 고기가 안 잡히는 이유를 바다 괴물의 탓으로 돌린다. 전형적인 피해 의식에서 비롯된다. 상상 속의 피해 의식이 다른 이들을 차별하게끔 한다. 그래서 어업이 주된 직업인 마을 사람들은 바다 괴물의 존재를 믿고 그들을 죽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단순히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간이 살아가는 '평범함'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배제하고 혐오한다. 영화 속 줄리아의 아빠는 중후반부에 루카와 알베르토에게 자신이 팔 한쪽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바다 괴물이 집어삼켰다는 농을 친다. 그 농담에 루카와 알베르토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장난이었다며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고 바로잡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루카와 알베르토가 물고기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이들은 고유한 이름을 가진 존재라며 손을 들어준다. 그 모습에 마을 사람들도 들고 있던 작살을 내려놓고 루카와 알베르토를 포용한다. 루카와 알베르토를 보고 인간들이 바다 괴물이라고 지칭하지만 그들은 괴물이라고 할법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단순히 인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물속에 있을 때는 바다 괴물의 모습으로, 물 밖에선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이들을 통해 아직도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해 물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차별받는 존재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차별과 혐오를 받을 것을 감수하고 먼저 나온 알베르토가 차별받고 있는 다른 이(루카)를 밖으로 끌어내고, 밖에선 줄리아와 줄리아의 아빠가 나서서 차별 없는 세상,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라며 선언하는 모습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영화 밖 세상에 큰 울림을 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런 선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고 함께 그들을 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깨어 있는 인식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루카의 엄마도 육지에 있는 사람들을 '육지 괴물'이라고 지칭하며 인간들과 대립한다. 이러한 모습은 서로 적대적 관계로 가는 지름길이며 서로 타협하는 길은 없다. 다행히 루카라는 인물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배우는 과정 속에서 이 대립이 끝을 맺는다. 서로 손가락질하는 상황에서는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 손가락질하는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은 나를 가리키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정체성으로, 모습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더욱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