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세준 Feb 28. 2022

임신한 아내가 코로나에 감염됐다

그럼에도 소중한 아기를 낳았다

2020년 1월부터 시작한 코로나는 끝날 줄 모르고 세계를 잠식시키고 있다. 이제는 잠식시킨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어쩌면 당연해진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식상하고 다른 누군가가 비슷하게 겪었을 일일 테지만, 나에게는 크나큰 경험이었기에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2021 6 어느  아침은 와이프와 나에게는 잊을  없는 하루였다. 와이프의 무서운 (?)으로 임신테스트기를  결과  줄이 나와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무엇보다 코로나를 조심하고자 외출을 극도로 삼갔다. 그래서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거리며 아기가 뱃속에서 커가는 모습만 행복하게 지켜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아기 예정일(2022 2 ) 며칠 앞둔 39주에,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000님(와이프)은 양성입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차라리 와이프 대신 내가 걸렸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 졸이진 않았을 텐데. 후회와 걱정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고 판단 능력이 점차 흐려졌다. 대체 어디서 걸린 걸까? 만삭 때면 조금씩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에 와이프는 아파트 단지를 도는 것 외에는 딱히 간 곳이 없었다. 집 앞 슈퍼마켓도 잠깐 머물렀고, 약국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와이프 몸에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목이 간지럽고 따끔거린다고 말한 와이프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은 내 모습과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운동하라고 했던 나 자신이 떠오르면서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되도록이면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할걸. 이미 모든 게 늦어버렸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 되는 시기였다.


일단 와이프는 따로 방에서 격리를 하기 시작했고 인터넷과 여러 채널을 통해 '임산부 코로나', '코로나 임산부' 등 다양한 키워드를 조합해서 검색해서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쏟아져 나오는 갖가지 정보들 속에서 어떤 게 옳은 것인지 잘 판단하는 게 중요했다. 사실 확진이 걸리면 확진자에게 지자체 보건소가 연락을 주지만 10만 명이 넘게 나오는 상황에서 그것마저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확진되고 며칠이 지난 뒤에야 보건소 담당자하고 연락을 할 수 있었고 와이프가 임신 막달이라는 것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보건소 담당자는 부랴부랴 상태를 면밀히 묻기 시작했고 응급 상황 시 연락할 수 있는 번호 등을 알려주었다.


코로나에 감염되기 전, 마지막으로 산부인과에서 진찰을 받았을 때, 의사 선생님은 다음 진찰 때 양수 양이 줄어들어있으면 제왕절개를 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말을 했었다. 아기의 몸무게도 2.4kg로 주수에 비해 많이 작은 편이어서 언제든지 응급 상황으로 커질 수 있었기에 우리는 안 그래도 불안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 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산부인과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양수 양이 줄어있는지 아기의 몸무게는 어떻게 됐는지 등을 알 수 없어서 더욱 불안했다. 만약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 아기한테도 위험할 수도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와이프는 보건소에서 알려준 응급 번호로 연락을 했다.


최근 들어 나오는 뉴스 중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건 코로나에 걸린 임산부들이 병원에 병상이 없어서 몇 시간을 떠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는 구급차에서 낳았다더라, 하는 불안한 뉴스들이 내 귀와 눈에 박혔고 '우리도 저러면 어쩌지'하는 불안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담당자는 입원 가능한 병원을 알아본다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당시에 회사에서 근무를 하는 중이었고 와이프가 병원으로 실려가면 언제든지 반차를 쓰고 달려가려고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한 점심쯤 무렵 와이프한테 전화가 와서 바로 받았고, 병원을 배정받았으며 구급차가 와서 본인을 태워간다고 했다. 나는 바로 팀장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집으로 이동했다. 차가 전혀 막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조금만 내 진로를 방해하는 차들이 있으면 괜히 클락션을 울리면서 차를 몰았다.


집에 도착하니 곧 구급차가 도착한다고 해서 아파트 정문으로 나갔다. 방역복을 갖춰 입은 구급대원이 기다리고 있었고 와이프는 그대로 구급차에 홀로 타서 병원으로 이동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와이프는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자연분만'을 선호했고 별 이상이 없으면 그렇게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 등을 알아본 결과 코로나에 감염된 임산부들은 아기에게도 코로나가 감염될 위험이 있어서 제왕절개를 한다고 했다. 살면서 입원이나 수술 한번 안 해본 와이프가 배에 칼을 댄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도 다행인 건 뉴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빠르게 대학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곳에서 아무도 없이 와이프 혼자 견뎌내야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남편 머리 끄덩이를 잡고 출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출산을 하는 것이다. 입원을 하고 시간이 좀 지나니 담당 의사는 코로나 감염으로 아기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제왕절개를 권유했고 와이프도 산부인과 진찰을 가보지도 못한 상황이어서 아기의 상태가 어떤지 몰라서 걱정돼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수술 날짜를 잡았고 그대로 진행되었다. 하반신 마취만 한 채로 제왕절개를 진행했다고 했다. 아기의 힘찬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얼굴을 보지 못한 상태로 바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했다.


전쟁과도 같았던 상황에서 그럼에도 아기를 무사히 출산했다. 와이프의 몸도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기를 바로 볼 수 없었다. 산모가 코로나 확진자이기 때문에 아기도 코로나 검사를 3일에 걸쳐서 진행을 하고 음성이면 일반실로 옮긴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아기의 사진도 실물도 보지 못하고 꼼짝없이 기다렸다. 아기를 낳았지만 볼 수 없다는 그 답답함은 참담함으로 느껴졌고, 와이프는 자책하기 시작했다. '나만 걸리지 않았더라도'라는 말을 계속했는데, 그걸 지켜보는 것이 쓰라렸다.


신생아실 담당자에게 매일매일 아기 몸무게와 분유를 먹이는 양이 적힌 문자를 받는데, 아기의 몸무게가 아주 조금씩 증가할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 한번 못 보고 있는 내 아들이 그래도 잘 살아내주고 있다는 벅찬 감정을 처음 느껴봤다. 3일이 지나고 다행히 아기는 모두 음성이 나와서 일반실로 옮겼다고 했다. 그리고 와이프가 입원한 지 6일째 되는 날 실밥을 풀고 퇴원을 했다. 그리고 그 당일 아침 아기의 사진을 받았다. 너무나도 이쁘고 천사라는 말을 왜 쓰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와이프는 격리 해제됐지만 병원 측에서는 감염력이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아기를 며칠이라도 더 맡기고 와이프 먼저 퇴원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했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우리도 그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아직 아기의 실물 한번 보지 못했지만, 휴대폰에 저장된 아기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임산부가 코로나에 걸려서 발을 동동 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을 응원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입만 봐도 알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