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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Jun 21. 2024

아이와 나

우리 잘 지내고 있는 거 맞지?

아직 겉옷을 걸치게 만드는 저녁의 선선한 바람이 점점 따뜻한 기운을 몰고 오는 것이 아쉬운 한강에서의 늦은 밤. 해는 이미 몇시간전에 떨어졌고 평소같았으면 아이들을 재워야 할 시간에 집을 나선건 오랜만인 듯 싶다.


몹쓸 야맹증때문에 야간 운전을 꺼려했던 것도 잊고 그저 어디론가 목적지를 정해놓고 가야만 할 것 같은 날이다. 무언가가 절실해지면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고 하던데 그깟 야맹증은 아무런 제약도 될 수 없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아이들은 잠깐 의아해 하지만 이내 신이나서 "엄마 정말 멋있어 최고야!"를 연발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애교섞인 맨트도 듣기 좋고 짙게 깔린 어둠의 차분함이 이끌어내는 고요함도 평화롭다. 악이 흐르는 차안의 공기는 하루종일 부딪혔던 우리의 오늘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는 또 이만큼 자랐다. 쟁을 치르는 날도 있고 무난한 하루를 보낼 때도 있었다. 유난히 많이 부딪히는 날이 더러 있는데 그럴땐 감정이 격해지기전에 내려놓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연습이 필요하다. 급하게 나아가려는 성격을 이겨버리는 연습.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사람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살아온 흔적이 얼굴에 드러난다고 하는데 종종 격해지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뭍어나는건 아닐까 점검을 해보곤 한다. 더 많이 웃고 사랑하며 살기에도 짧은 시간들 아니던가.


계획대로 흘러갈리 없는 초등학생 저학년의 생활에 욕심을 버린지 오래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일로 한발자국 물러서곤 한다. 해야할 것들에 대한 규율이나 규칙에 대한 잔소리를 하는 일도 적당히 하기로 했다. 잔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감정통제가 어려워진다.


계획표에 있는 리스트에 체크를 해가며 하루 일과를 해나가다가 갑자기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해야할 것들을 줄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들려온다. 꽤 여러번 조율했던 결과물이 맘에 들지 않는 아이의 의견을 반영하여 덜 중요한 과목을 삭제시키거나 횟수를 줄여본다.


아직 흡족하지 않은 아이의 표정을 읽고 나서 시간조율을 해 보았는데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이거지!!"


아이의 통쾌한 한마디는 모두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독기를 품으면 감정이 격해지기 마련이고 독기가 빠지니 서로 수용할 범위가 넓어져 얼굴 붉힐 일이 없다. 자칫 아이에게 휘둘릴 수도 있을거라 여겨지는데 어느정도의 선만 넘지 않는다면 크게 걱정할일은 아닌것이다.


아이는 수업이 늦게 끝나거나 에너지 발산을 미쳐 다하지 못해 실컷 뛰어놀다 오느라 그날 하기로 한 공부를 종종 패스하곤 한다. 어느날 아이가 집에서 푸는 문제보다 학교에서 배우는 문제의 진도를 더 나갔다고 이야기한다. 명히 한단원 정도는 선행으로 시작했었는데 어지간히 패스한 모양이다.


"건너뛰고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곳부터 시작하자"


결론은 간단했다. 지나간 일일 뿐이기에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한다. 감정소모에 에너지를 쏟는 일보단 앞으로 해나갈 용기에 박수를 쳐주는 진짜 멋진 엄마가 되어 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지 또는 잘 놀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생각해 내느라 아이들과의 대화를 이끌어 내곤 한다. 


우리의 오늘을 평화롭게 살아 내기 위한 일들이 어려웠던 지난 날들은 지나갔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서로가 단단해 졌던 것처럼 오늘이 지나고 나면 한뼘씩 더 자라있을 우리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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