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기 싫은 날

지루함의 끝에서

by 소월

정해놓은 일들을 끝내지 못하면 숙제를 하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함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자신에 대한 관대함이 이리도 없는 건가 싶지만 MBTI를 맹신하게 되면서 빠르게 인정했다.

재활로 시작했던 운동을 이제는 "생.존.운.동."이라 칭하며 하기 싫어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몇일 전, 한달 여 만에 다시 시작한 헬스마져 몸살이 나면서 또 미루게 됐다. 예측할 수 없는 일상들로 찝찝함의 연속이 이어져 갔다.

다시 아파오는 허리를 간신히 일으키며 오늘은 꼭 운동을 가고야 말겠노라 굳은 다짐을 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아무생각없이 무조건 집을 나서서 센터로 향했을 몸이 오늘은 천근만근 말을 듣지 않는다. 10톤쯤 되는 무언가에 질질 끌려가듯이 억지로.. 오늘은 가야만 한다.. 그렇게 집을 나섰다.


운동도 가기 싫었지만 가는 길에 마주칠 사람들이 떠올라 더 귀찮아 지기 시작했다. 늘 상냥한 편이지만 오늘같은 날은 쥐구멍으로 다니고 싶은 그져 그런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산을 집어 들었더랬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테야.

아직도 볕이 뜨거웠지만 바람막이로 꽁꽁 싸메고 양산으로 무장한 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걸 기대하며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집에서 5분 거리인 헬스장인데 한 50분은 걸어온 느낌이다. 터덜터덜 아주 천천히 세상 무거운 발걸음이 옮겨지는 중이다.


엘레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귀찮은 마음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본연의 맡은 임무에 충실한 그는 곧장 4층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가야만 해!


센터에 들어섰을 때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또는 건강한 삶을 위해서?, 아니면 자기만족으로. 각자 다른 동기를 가지고 운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물을 마시며 일단 정신상태를 가다 듬어 보기로 했다. 내 동기는 "생존운동"이니 나 역시 저쪽 세계로 합류해야만 한다.



몇년 전 말썽을 부리던 허리가 탈이 나는 바람에 태어나서 처음 구급차라는걸 타봤다. 누워는 있었지만 조금의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던 몸뚱아리가 정말 원망스러워 병원으로 실려 가는 내내 눈물로 범벅이 돼있었다.

출산의 고통에 맞먹는 강도쯤으로 기억한다. 응급구조사님은 고통스러워 하는 나에게


"환자분 치료 잘받으세요"


라며 친절하고 따뜻한 인사를 건네며 걱정어린 눈빛을 보내며 돌아섰다. 그 말을 들으니 더 눈물이 나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


"고생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치료 잘 받을께요"


울먹이면서 답을 했더랬다.

응급병동으로 이송되었는데 의사분이 오셔서 테스트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저 지금 움직일 수가 없다구요 ㅠㅠ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움직이는 통에 허리에 힘이 들어가 또 한번 비명아닌 비명을 지르게 됐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병원생활이 시작됐다.


5일째가 되던 날 드디어 스스로 몸을 일으켜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천천히 걸어다니며 운동도 하고 아이들도 보고싶고 병원생활이 답답해질 무렵.

의사선생님은 입원을 몇 일 더 권유하시며 감동의 한마디를 건네셨다.


"이럴때 아니면 언제 쉬겠어요"


이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완전히 나을때까지 입원을 해 있으면 좋으련만 답답하기도 했고 휴가를 내어 집안일을 돌보는 남편도 걱정이 됐고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고 반려견 생각도 나서 더 머무르는 건 내키지 않았다.

퇴원을 하기로 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였다.



이렇게 숨겨진 썰을 갖고있는 나의 허리를 위해 재활운동을 시작한지도 2년이 지났다. 일단 나름의 규칙이 있었는데 웨이트 3가지를 3세트씩 하고 나서 마무리는 런닝머신에서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것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런닝머신만 지루한게 아니였다. 아직도 의식은 "운동이 너무 하기 싫다"였기 때문에.. 평소 하던 무게에서 5키로를 다운시켰다. 마음을 다 잡은뒤 시작에 앞서 5키로를 더 다운시켰다. 진짜 하기 싫다.


워밍업이라고 생각하고 무리하지 말자 싶었다. 무리하는거 별로 안좋아 하니까.

가볍게 지루한 시간을 견뎌낼때 쯤 웨이트 3가지를 모두 끝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런닝머신을 최소 30분이상 타야하는데 그 30분이라는 시간이 정말 너무 지루해서 미칠 지경이다.


속도 5. 인클라인 5.

열심히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몇 분 지났을 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는 안들린지 오래고 모니터쪽으로 눈이 했다.

채널을 열심히 돌려보며 집중할만한 프로를 찾아 헤메기 시작했다. 기안84님이 나오는 여행프로였는데 인도에 관한 프로였다.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인도로 가야 한다.

인도 최대 규모의 화장터인 바라나시 마니까르니까 화장터에 관한 영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루에 약 200~300명 정도의 시신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우는 힌두교인들의 문화가 담겨 있었다. 태운 유골을 겐지스강에 뿌리는데 그 행위가 곧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의미를 상징한다는 내용이다.


인도여행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기도 했는데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로는 복잡하고 냄새가 많이 나며 질서 자체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친했던 지인은 회사생활 2~3년을 하고 나면 퇴사후에 꼭 인도여행을 다녔더랬다. 인도만의 매력이 계속 생각이 나서 한번 갔다오면 또 가게 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영상의 인도는 그나라만의 분위기와 향기를 가진듯 보였다.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졌다.



속도 5.5. 인클라인 3

너무 워밍업만 한다 싶어서 속도를 올려봤는데 운동강도를 아주 조금만 업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슬며시 인클라인을 다운시켰다. 여전히 운동이 하기 싫다.


인도에서는 탈출했으니 이제 다른 채널이 궁금해졌다. 또 열심히 채널을 돌려가며 정착지를 찾아야만 했다. 예능 프로에 손가락이 멈추고 금새 그 프로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새 키득키득 웃으며 입꼬리는 저만큼 올라가 있고 심장은 나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대채 얼마나 웃어댄 것인가. 옆사람한테 전염을 시킨건지 나를 보며 웃는데 웃는게 웃는게 아닌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자제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신차리자.


속도 6. 인클라인 2 - 0

마지막으로 속도를 6으로 올리고 인클라인을 더 다운시키다가 그냥 아예 평지에서 마무리를 해보기로 했다.

정신 못차리고 모니터 속으로 빠져들 기세라 이어폰에서 아까부터 흘러나왔던 음악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런닝머신에서는 보통 빠른 음악 위주로 듣는데 의외로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을 들으면 심장박동이 빨라져 견디기 힘든 고비가 찾아와도 그저 차분해져라.. 차분해져라 주문이라도 거는 것 같은 마법이 이루어 지곤 한다. 그래서 조용한 음악 반 활기찬 음악 반 듣는 편이다.



-2분.

고지가 보인다. 이 지루함이 곧 끝날 생각에 갑자기 힘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은 더 걷지 않으리.

5초를 남겨두고 손가락이 이미 버튼위를 향하고 있다. 30분이 되자마자 꾸욱 눌렀는데. stop 버튼이 아닌 cooldown 버튼이였다. 이럴수가...


1분 30초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 대신 속도는 4.8

짧지만 길고 긴 이 시간들을 영혼없이 견뎌내고 지루함의 끝에 다다랐을때 후련함과 승리감이 꿈틀거렸다. 야호! 끝났다. 해냈다.


런닝머신과의 인연은 20대때 회사생활을 하면서 였는데 그시절엔 한시간 타는것도 너무 쉬운 일이였는데 이젠 30분을 타는 것 마져 너무 지루한 일이 돼버렸다.


헤어지고 싶지만 헤어지기엔 너무나 아쉽고 다시 돌아갈 것만 같았던 그대여. 끈질긴 인연 참으로 질기구려.


등산화를 사야겠다 마음 먹었다. 같은 유산소이지만 이왕 하는거 경치도 보고 좋은 공기도 마시며 지루하지 않을 등산을 계획하며 헬스장 문을 나섰다.


컨디션 좋은 날




컨디션도 그저 그렇고 운동하기 싫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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