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 몸속 끈질기게 머물러 있었던 바이러스들. 일명 "나쁜 세포들"이 거의 사라져 갈 때쯤 주말이 찾아왔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상이 찾아온지 한달 정도가 흘렀다. 반려견의 약을 챙겨주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 알람을 세개나 맞춰 놓았는데 오늘은 세번의 알람을 모두 꺼버린 탓에 7시가 훨씬 지나고 느즈막히 눈이 떠졌다. 아차!! 더 일찍 일어났어야 했는데.. 시간을 맞춰 약을 먹이는 일이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알람까지 끌만큼 나약했던 내 정신상태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고 이내 토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부터 만족하지 못한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아침을 조금 찜찜하게 맞이하고 나서야 집안의 투어가 시작됐다. 눈에 띄는게 영 불편한 과자나 아이스크림 포장지들(아이들 작품), 알맹이만 쏙 빠지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약봉지들(남편 작품), 마킹방지를 위해 넉넉히 세장이나 깔아놓은 패드에 가득차 있는 밤새 암모니아 냄새로 코를 찔렀던 액체들(보리,토토 작품).. 그냥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몸에 의식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정리하자. 그렇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동안 불현듯 떠오른게 있다. 내 노트북! 너에게도 휴식시간을 줬어야 했는데 켜둔채로 잠들다니. 또 한번의 죄책감이 나를 압박했다. 지금 바로 책상앞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창조적 발상에 심취하고 싶었으나 꾸욱 꾹 단단히도 눌러내며 곧 오겠노라 약속을 했다. 아쉬운 시간들.
조용히 전원버튼을 누른 후 충전단자를 빼버렸다.
내일 활기차게 월요일을 시작하려면 오늘의 달콤한 휴식시간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나와 함께 숨쉬고 있는 생명체들이 넷이나 눈에 띈 이상 달콤한 휴식따위 개나 줘버려!
영혼없이 움직이는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한 의무감이 나를 짖누르기 시작했다. 아직 회복이 덜 된 탓인가..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겠노라 다짐한채 부지런히도 해왔던 루틴들이 지금은 무너져 버렸고, 나도 몰랐던 몹쓸 완벽주의 성향과 맞물리며 나에 대한 정체모를 죄책감과 실망감들이 계속 나를 둘러싸고 있다. 언제쯤 다시 "루틴"이 완성되어 있을까.
계획화 되어 있는 인생을 추구한다던 그 과정 어딘가쯤에 지금 서있다. 자신을 너무 타이트한 굴레속으로 빠뜨리려 하는건 아닌지, 일상을 조금 더 느긋한 시선으로 느껴볼 수는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던지면서도 여전히 완벽할 수 없지만 완벽하기를 바라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조금 더 해봐야 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적어도 한발자국쯤은 더 디딘 위치쯤에 서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