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금자리. 이젠 안녕
시각적인 감흥이 유쾌하지 않을 때
신혼부부특별공급에서 기준하는 마지막 날짜에 간신히 안착한 우리는 3년 전쯤 청약에 당첨이 되었다. 만만치 않을 대출금도 그렇고 사실 분양권을 팔 생각이였는데 새집에 살고 싶고 잘만 버티면 얻게될 시세차익을 계산해보며 결국 입주를 결정했다.
결혼 후에 남편의 지방발령으로 김해 신도시의 새아파트 세입자로 들어가 살게 되었을땐 세입자답게 집에 들어가 살기만 하면 됐었지만 본인 명의의 집은 달랐다. 입주를 하지 않을 계획이였던 터라 옵션을 넣지 않았기에 사재로 열심히 발품을 팔아가며 모든 옵션을 충족시켜야 했다. 시간약속 잡는 것부터 해서 스캐쥴을 다 짜놓았음에도 한번 약속이 틀어지게 되면 다른 날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여간 골치 아픈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집이라는 데에 이 모든 수고들을 바칠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아이들과 단지내 놀이터 투어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근처 아이 엄마들과의 커뮤니티도 형성이 되었다. 도로를 건너지 않고 단지내에서 반려견과 산책을 할 수 있고 비오는 날엔 비를 맞지 않고 지하주차장에서 엘레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새집이라는 명목하에 시각적인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물론 인간은 망각의 동물, 적응의 동물따위라고 이름붙혀진 어떠한 성격의 동물인지라 살면서 점점 시각의 감흥을 잃어갔다.
변동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을땐 1년은 이자만 내면 됐기에 크게 부담이 없었다. 문제는 1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원금상환이 들어갈때부터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금리가 한달이 멀다 하고 올라 버리는 탓에 자주 금리인상문자를 받아야만 했다. 사실 이렇게 변동금리가 말도 안되게 오를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여서 고정금리로 받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동네 지인들과 종종 티타임을 갖게 되는 날이면 금리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로 등장했고 우리들은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어보자는 심산으로 '이놈의 금리'에 대한 하소연을 각각 쏟아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또 한번의 금리인상이 되면서 압박감은 더욱 가중되어 갔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은행들의 성과급 잔치에 혀를 내두르며 이걸 더 이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빠듯해지는 생활비에도 점점 예민해지고 예쁜 옷 따위 아이쇼핑으로 만족하는 일은 흔해졌다. 미니멀라이프를 하겠노라 다짐하며 위로 아닌 위로도 하면서 말이다.
아이의 간식을 위한 소비가 늘어났지만 간식은 몸에 좋지 않다라는 이유로 포장하며 줄이려 했다.
기약이 없는 도박같은 이 짓을 그만두기로 했다.
네식구에 반려견까지 살기에 넓지 않아.
주변 인프라도 별로야.
상가도 몇층 안되.
아파트 정문 디자인이 별로야.
이곳이 싫지 않은 이유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되지도 않는 이곳이 싫어야 하는 이유를 나열해 가며 거짓의식들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내려놓기까지는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했지만 내려놓고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떤 날은 네 팀이 집을 보러 오기도 했는데 집보러 온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정리에 청소에, 약속된 시간을 담보로 하루를 다 반납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이 일도 만만치가 않아서 그냥 빨리 누구라도 집주인이 나타나 주기만을 바랐다.
여러차례 꽤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는데 하루는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 좋은 날' 평소보다 더 깨끗히 구석구석 청소를 했다. 그리고 집을 보러 온 사람이 평소와는 다르게 정말 구석구석 꼼꼼히 둘러봤다. 길어지는 관람에 아이가 짜증을 냈지만 '예감 좋은 날'이였으므로 차분한 어투로 아이를 달래기도 했다.
어떤 일이 성사가 되려면 여러 변수들의 합이 맞아야 했는데 그게 바로 이날이였던 것이다.
만감이 교차했다. 더 오를것 같았는데...반등하는 추세라고 그러던데... 이제 조금 여유가 찾아오려나... 등등.
거래가 성사되고 나서부터 망각의 동물이였던 나는 잃었던 시각의 감흥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외출하기 위해 현관을 나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릴때면 302호를 듬직하게 품고 있는 현관을 바라보며 엘레베이터가 도착할때까지 눈을 못떼곤 한다. 아쉬움에 한껏 목말라 울부짖는 눈동자가 고정된 채로 말이다.
직업병이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억지로 부여해가며 곧 시각적인 유쾌함이 사라질 날의 기다림이 안타까움을 창조해낼지언정 망각의 동물이라는 선물을 애써 기다려 보기로 했다.
곧.
조만간.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