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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Oct 14. 2023

어렵지 않게, 어려울 수 있는 것

인생은 관계의 연속이다

분위기는 사람을 변화하게 만들고 본래 자신안에 내재되어 있는 성향에 마이너스를 주기도 플러스를 주기도 한다. "분위기를 탄다"라는 뜻이 "분위기에 휩쓸리다"인 것처럼 얼마나 휩쓸리는지의 열쇠는 분명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 또는 그 무엇이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집안의 가장이셨던 아빠는 대인관계에 그리 큰 뜻이 없으셨는데 아마도 그러한 성향은 자라온 환경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다보니 점점 벽이 생길 수 밖에 없고 그러한 성향은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분위기에 흡수되었던 자아는 가족이 아닌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혼돈의 시대'를 맞이 했다. 그들에게는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인간관계가 나에겐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학습되어지지 않은 기억은 늘 긴장을 안고 있었다.

​관계는 다차원적인 문제라 여겨진다. 알고리즘에 의해 명확한 답을 내세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얼키설키 뒤엉켜있는 실뭉치처럼 복잡하고 다소 미묘하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미로를 헤매느라 깊은 고뇌에 빠지기도 했는데  관계의 경험은 그에 대한 이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세상엔 정말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친하게 지내는 회사동료가 어느날 맹장수술 입원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시간을 쪼개어 야근 근무까지 마치고 문병을 가기위해 음료수라도 사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마트나 편의점을 찾았는데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 동네를 몇바퀴 돌고 나서야 작은 구멍가게에서 겨우 살 수 있었다. 병원에서 마주한 동료는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병문안을 와준 나와 같이 저녁을 먹고 오라고 하는 남자친구의 말을 이상하게 받아쳤다.

​"괜찮아. 언니 저녁 않먹어도 괜찮지?"

​이게 무슨 귀신 시나라까먹는 소리던가.
야근까지 하고 먼길을 달려 왔고 음료수를 사가겠다고 동네를 네바퀴는 돌아서 옷은 땀범벅에 몸살기운이 있었던 나는 몹시 지쳐있었고 배가 많이 고팠다. 눈치없는 동료의 질문이 괜찮을리 없었다. 최소한 밥은 아니더라도 간단한 간식이라도 먹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 것이 배를 채울지 않채울건지 고민해야 하는 문제일 거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귀여워 해주고 챙겨주고 했던 일들이 그 동료에게는 그저 언니로서의 당연한 의무쯤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씁쓸함이 느껴졌다. 최소한의 배려로 상대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고려했더라면 그날 배를 굶지 않고 기분좋게 병원문을 나섰을텐데 말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고 느낀다. 소소한 호의를 감사히 여길줄 알아야 하고 상대를 배려한다는 것은 그만큼  존중의 표현이고 관심이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을 테니까.

​이걸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일은 어려웠다. 따끔한 조언섞인 말을 꺼내 보며 지속 가능한 관계를 이어나가야 할지 '나는 호구였다'임을 인정해야 할지 말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수 있고 그날따라 남자친구와 트러블이 있을 수도 있고 동료는 또 다른 입장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보여지지 않는 원인을 이해해 보기로 하면서 결국은 입장차이 일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예전 좁고 깊은 인간관계만을 추구했던 성향은 좀 더 다차원적인 접근을 하면서 조금은 넓은 인간관계로 발전해 왔다. 잦은 이직으로 거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한 두가지씩의 교훈 정도는 던져준 셈이다. 어떠한 인간관계도 1차원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입장차이를 조금 더 들여다 볼 수도 있는 문제이고 좀 더 고차원적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어려운 과제란 생각이 든다. 좁은 관계가 될지 넓은 관계가 될지는 얼마나 다각도의 넓은 생각을 해보는 부지런함인지도 이다.


물론 좀 더 다른 시각으로 '그건 개념이 없는 행동이다' 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 문제일 지언정 그건 각자가 바라보는 이념의 차이거나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늘 어려움을 안겨주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은 어찌보면 어렵지 않게 풀어갈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겠다.


가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하는 얘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고 성의없는 대답으로 일관하며 본인의 이야기를 끌어 가는 경우가 있다. 다시 돌아와 얘기의  본질을 상키시켜주는 수고스러움을 조금 감내할 수 있다면 이러한 관계의 지속성 또한 이로움이 더 많다고 보여는 이유도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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