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월 Oct 12. 2023

마흔의 언덕을 지나는 길

사십대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은 과제를 안겨 준다

히끗히끗 한두개씩 보이던 흰 머리카락이 이젠 머리카락을 넘길때마다 세네개씩은 보여진다. 세치염색은 왠지 내가 정말 중년의 느낌이 나게 해주는 것 같아서 아직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대신 검은색보단 흰 머리카락을 조금은 덜 보이게 할 갈색으로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중년이라는 말.


삼십대의 마지막을 보내기 시작할 무렵 사십대를 바라보는 나의 자아는 굉장한 부담과 낯설을 안고 있었다. 아빠는 "너도 내년이면 중년이네"라는 말씀을 종종 하시며 믿기지 않는다는 마음보단 믿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강해 보이셨다. 마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신체 곳곳에서 백기를 들기 시작하며 자주 아프고 컨디션이 좋은 날보다 안좋은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직 연예인을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니고 머리속은 온통 엔도르핀을 갈망하는 의지로 가득했는데 말이다.


좀처럼 인정되어지지 않는 마흔에게 왜 벌써 나를 찾아왔는지 물었다. 난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극한의 낯선 세계로의 초대에 이방인 것 같아 갈길을 잃어 버릴 경이였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마흔은 이미 흔적을 남기며 서서히 가까워져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외면한들 뭐가 달라질까.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100세 시대라 칭하는 현대인들은 부모님 나이대의 기성세대때 보다 액면이 더 어려보인다는 것에서 조금의 위안을 얻어보려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철저한 자기관리, 선크림의 생활화등 여러 가설이 존재하지만 그에 더하여 늘어난 수명대비 비율적으로 인생을 나누는 영역에서 마흔이라는 언덕은 내리막길이 아닌 오르막길을 아직은 올라가고 있는 그 어디쯤이 아닐까 싶다.


막상 마흔이 되면 아무 감흥이 없다고들 한다. 그말을 굳게 믿고 싶어 마인드 컨트롤을 해댔지만 마흔을 맞이하고 사십대의 삶을 살아간다는 건 없던 감흥마져 춤추게 했다.

사십대가 되면 프리랜서가 아닌 번듯한 직장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받고 일할 날을 상상했고 월급통장에서 긴 숫자들의 행진을 감상하길 바랐고 마음의 양식을 채워줄 외국어 하나쯤은 섭렵했을 줄 알았다.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흘러간다는 생각으로 마흔의 초입은 그리 달갑지 않게 다가왔다.


마흔의 변화를 어루만져 줄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몇년 동안 놓고 있었던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고 헬스 회원권을 끊었다. 이제 있던 근육마저 빠져나갈 나이 아니던가. 뭐든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급격히 떨어진 체력을 보강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근육통에 시달리는 일이 이젠 옆에 두지 않으면 허전한 친구같은 존재가 되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라고 증명해 주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외국어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생때 담임선생님이 일본어 담당이셨는데 선생님과 꽤 친한 학생중 한명이였던터라 자연히 일본어에 대한 애착이 좀 있었더랬다. 일본어만큼은 자신있었던 그때와는 달리 희미해져버린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를 다시 소환했다. JLPT를 봐 보겠노라 당찬 목표도 세워보면서 말이다.


정직원으로서의 회사생활을 하겠다는 목표는 좀 어려워졌다. 집이 아닌 곳에서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사회생활을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프리랜서 나름의 적절한 시간배분과 육아맘으로서의 충실도를 기여하기 위해선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은 늘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국어사전을 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조금 더 뜻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매개채를 더 탐색하곤 한다. 일년쯤 지나면 나도 책 한권 낼 수 있으려나. 작은 소망도 살짝 얹어 보면서 말이다.


마흔을 바라보고 있을땐 중년의 시작이 두렵기만 했다. 부모님의 중년을 겪으며 세뇌되어버린 자의식이 발동한 결과이겠지만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다. 좀 더 멋지고 풍부한 인생을 설계하고자 했던 의지는 아직 살아있다. 살아보니 사십대의 인생도 꽤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라 여겨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