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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Oct 16. 2023

당신에게서 이상한 향기가 느껴져

향수가 주는 특별한 기억들

쓸쓸한 가을의 낙엽을 닮은 곡 Kotaro Oshio - twilight 이 깃털이 빠지고 핑크색 몸을 드러낸 아기 새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장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아빠에 대한 기억으로 꿈을 꾸었는데 이어폰을 낀 채로 잠이 들었었다.  아빠에 대한 향수로 남아있는 이 곡은 들을때마다 슬픔을 대신해 주었던 꿈의 잔상을 불러일으킨다.

음악의 기억이 그날의 에피소드나 현상들을 반영하듯 향수는 지난날들의 추억서린 기억들을 소환하곤 한다. 벗꽃이 흩날리는 봄날이 되면 외로움을 달랬던 도서관 창밖의 햇살을 떠올리는 것처럼.

후각을 자극하는 향수의 잔향 또한 지난 기억들을 담는다.

처음 향수를 접한 건 아빠가 사우디에서 일을 마치고 귀국길에 사오신 니나리치 레르뒤땅 EDT인데 첫향은 기억나지 않고 잔향이 좋아 향수에 입문하게 해준 향이다. 아빠의 젊은 시절과 나의 유년시절을 함께 담고 있다.

스무살 무렵 엘리자베스아덴 썬플라워EDT를 처음 용돈으로 구입했었는데 연하의 남자친구와 처음 연애란걸 했던 시절을 회상하게 한다. 상처를 주고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은 은은한 잔향으로 남아 별로이긴 하지만.

플라워 바이 겐조 EDT가 한참 유행할때 지인에게서 풍기는 도시적인 향이 꽤 괜찮아 구입한 적이 있다. 같은 향수라도 뿌리는 사람마다 고유의 체취와 섞이며 오묘하게 다른 향을 풍기는데 내가 뿌렸을땐 특유의 오이향과 알콜향(당시 소주향으로 기억함)이 올라오면서 좋지 않은 향을 남기 불호가 되었다.

버버리 클래식 런던 우먼 EDP는 세번째 남자친구가 뿌리던 향이었는데 향수는 굳이 성별을 구분짖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포맨으로 출시된 향수를 여성이 뿌리거나 반대로 뿌리더라도 중성적인 또 다른 향취를 풍긴다. 오 드 뚜왈렛보단 향이 깊고 잔향이 훨씬 오래 남는다. 친구로 지내겠다는 생각마져 무참히 짓밟아버린 진한 향이 떠오르곤 한다.

벚꽃의 기억을 안고 있는 록시땅 체리블라썸 EDT는 외로워하는 영혼에게 생명을 주었던 향이다. 도서관에 갈때면 이 향과 외로움을 바꾸어 준 친구같은 향기로 남았다. 같은 EDT라도 지속성이 약한 편이라 잔향마저 사라지면 덧 뿌려 주곤 했다.

지방생활을 뒤로 하고 다시 서울쪽으로 오게 되면서 프라다 캔디나이트 EDP를 새로 구입했는데 예전에 썼던 꽃향기가 베이스로 깔린 향은 특유의 단향을 품고 있는 향이 많은데 단향이 조금은 적게 풍기는 탑노트가 초코향이 나는 매력적인 향수이다. 역시 오 드 뚜왈렛보단 잔향이 진하고 깊다.

생일선물로 받은 미스디올 블루밍부케 EDP은 플라워계열 특유의 단향과 진한 탑노트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잘 뿌리지 않게 되었다. 언제 부터인가 계속 뿌려왔던 계열의 향이 인생의 쓴맛을 보면서 불호가 되었다. 더이상 플라워 계열의 향수는 뿌리지 않는다.

요즘 최애의 향수는 단향도 없고 알콜향도 없는 르라보 상탈 33 EDP 우디향 계열의 향수이다. '타오르는 모닥불과 스모키하게 날리는 연기, 빛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 느껴지는 센슈얼한 무드'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역대급으로 호불호가 강한 향이 아닐까 싶다. 이향을 설명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좀 재미있는데 사우나향, 아저씨향, 린내, 매운향등 다양한 향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향수를 접한 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쓰는 향수라고 해서 시향도 없이 직구로 구매를 했다. 향수를 인터넷으로 구매할 경우 택배로 배송되면서 많이 흔들리기 때문에 일주일정도 안정되는 기간을 두는게 좋다.

겨울을 닮은 상탈 33의 첫 향은 매우 강렬한 스파이시 향인데 아마 여기에서 호불호가 갈릴듯 하다. 향기가 안정화 되기 전 매운 향이 올라오면서 완전 불호였는데 안정화 후에 다시 뿌렸을때 느꼈던 스파이시향은 약하게 내려앉은 스모키한 향이다. 그동안 뿌린 오 드 퍼퓸 중에서는 단연 향이 깊고 진하며 잔향 또한 우디향으로 마무리가 되면서 남성적인 매력이 특히 돋보이는 향수이다. 포멘으로 출시가 되었지만 여성이 뿌리기에도 충분히 매력있는 중성적인 향수이다.

남편은 이 향을 "강아지의 오줌 냄새"로 표현하기도 한다. 아무리 맡아도 적응 되지 않는  "고급진 린내"라고도 했다. 리는 대상(옷, 피부)이나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향이 나긴 하지만 조향사가 저런 향을 제조했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취향저격이 아니여서 못뿌리게 할 계략이 아닐런지.


퍼퓸(Perfum) : 농도가 깊고 향이 풍부. 지속시간 약 6시간
오 드 퍼퓸 (EDP) : 퍼퓸과 거의 동일하나 농도가 퍼퓸보다는 낮음. 지속시간 약 5~6시간
오 드 뚜왈렛 (EDT) : 향료에 증류수와 알코올이 섞임. 오 드 퍼퓸보다 향이 더 옅으며 산뜻한 편. 지속시간 약 4~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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