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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Oct 23. 2023

아버님이라고 불러드려도 될까요?

저는 고객일 뿐입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컨디션 저하. 소소하지만 조금 많이 바쁨. 아픈 반려견이 걱정됨. 집안일 역시 할게 많음. 독서에 목마름. 결국은 게으름. 이 모든것들을 핑계로 미뤘던 주말외출을 감행했다.

다음주엔 꼭 외출하자는 말로 몇주를 미뤄왔는지 이젠 더 미룰 명분도 없고 나 역시 주말의 집콕은 너무 답답했다. 베스트드라이버답게 멋지게 운전대를 잡고 때론 양보도 해주고 얄미운 운전자는 절대 비켜주지 않으며 나름의 철칙을 성실히 지켜냈다.

아이들과의 주말데이트는 처음엔 도서관이 목적지였는데 여기서 조금 변형이 되어 고양이만화책카페로 장소가 옮겨졌다. 몸으로 놀아주지 않아도 되고 독서가 가능하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이곳은 천국이다!

시내 데이트까지 마치고 "오늘정말 재미있었어"라는 아이의 말에 뿌듯해진 마음을 안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정산을 하시는 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님이시다. 조금 멀찌감치서 계셨는데 불러야 하는데 마땅한 호칭을 정하느라 고민에 빠졌다.

할아버님이라고 부르기엔 그분은 이곳이 직장이고 근로자이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저기요는 애매모호하고 썩 기분좋은 호칭은 아니다. 저기요가 어디를 말하는 건지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게 뭐람!  여기요. 요기요의 동생이나 배달의민족의 친척쯤 될 것같은 말로 여기로 오라는 말같아서 예의없어 보인다.

흠.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까. 예의를 갖추면 좋겠고 근로자의 의미를 담아야 하며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 호칭을 생각하다가 그분과 눈이 마주쳤다. 다른 운전자에게 가기전에 기회를 잡아야 했기에 급하게 "아버님"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앗!아버님이라니... 우리 아버님은 의정부에 계시는데.

졸지에 아버님이 되어버린 근로자분께서는 10분이 초과된 시간에 대해서는 부과하지 않으셨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와버린 호칭에 죄송했지만 이내 죄송하지 않아졌다. 근로자분께서는 환하게 웃고 계셨기 때문이다. 완성되지 않은 호칭이였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호칭은 늘 난제다.

식당에 가면 보통 사장님이라고 부르는데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분이 사장님이 아닐수도 있는데 적절한 호칭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눈이 마주칠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번쩍 든다. 너무 예의없어 보이는 이 행동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 적절한 호칭을 고민하는 생각의 연장선인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는데 이모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언니...  내가 언니이고 근로자는 동생인데 무슨 언니란 말인가. 결국 해답없는 목소리에 아무 뜻을 싣지 못한채 팔만 부끄럽게 허공을 맴돌 뿐이다.

이사준비를 하면서 여러 인테리어 업체와 얘기할 일이 생긴다. 불려지는 호칭이 보통은 사모님이나 사장님 또는 여사님이다. 사모님은 극존칭처럼 느껴져 부담스럽고 사장님. 난 사업을 하지 않는다. 프리랜서일뿐. 여사님. 이건 내가 나이를 더 먹으면 고려해 보고 싶은 호칭이다. 그냥 고객님이라고 불러주면 좋겠다.

제일 충격적인 호칭은 아줌마였다. 사모님,여사님의 극존칭으로 불려지다가 아줌마로 불려지는 기분은 썩 좋지 않다.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한번도 사장님을 아저씨라고 불러본적이 없는데 아줌마라는 호칭은 가히 충격 그 이상이였다. 고객님이 적절한 표현이다.

기분 좋게 차에 올라탄 아이들은 다음 주말에도 오자며 뒷자석에 나란히 앉아 합창을 한다. 다음 주말에도 새로운 아버님을 만나러 이곳에 또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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