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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Nov 10. 2023

나이와 관계의 유연함은 비례하지 않는다

나이테가 늘어날수록 어려운 것도 늘어난다

불투명게 하얀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에 두 손을 맞대어 온기에 기대고 싶은 겨울의 문턱은 차가운 문제를 던져주며 반갑지 않은 얼굴로 냉기를 뿜어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평소에도 잡념이 많지만 더 복잡해진 관념들에 치 이성과 감정의 중간 어디쯤에서 길을 잃었다.


예전 같았으면 친한 사람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누며 어려움의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겠지만 이를 더 먹을수록 사람들과 문제를 공유하기  속으로 삭는 일이 더 마음이 편해졌다. 에겐 중대한 문제일 수 있어도 듣는 이에게는 시시콜콜한 일로 여겨질 수 있고 결국 해답을 얻지 못한채 공중분해 되버리는 그들에겐 가십거리정도였을 나의 중대함에게 무례함을 범하게 된다.


늘 그렇듯이 외로움의 시간을 찾는건 공교롭게도 나 자신이다. 친해지긴 싫지만 친해질 수 밖에 없는 필연의 관계인 것이다. 일단 그 시간을 견디는 일은 은 생각의 짐들을 안겨 준다. 짐을 하나씩 풀어보는 일부터 시작하곤 하는데 해결이 되면 또 다른 짐을 풀어보며 상념에 빠지는 일이 대부분이다. 사실 해결이 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여러 생각을 거치는 동안 '생각의 정리'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을 두는 편이다. 섣불리 답을 얻으려 하다간 오답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의견을 빌리려고 하지 않는 건 아웃사이더여서가 아니라 생각이 아웃사이드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여지는 늘 입장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므로 양쪽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에게 조금은 유리한 퍼센테이지를 부과하는 셈이다.(단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아주 조금)


그러다보니 종종 의견충돌이 있을 수 있다. 언뜻 내가 듣고 싶은 의견 들으려고 해서 생겨난 충돌쯤으로 생각이 될 수 있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얘기다. 일단 내가 처한 입장을 설명한다고 해도 상대방은 100프로 내입장에 설 수 없다. 어쩌면 제 3자이기에 더 객관성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문제는 100프로 설명되지 않는 입장에 있다. 시작부터가 나사하나 빠진 상태였으니 당연히 완벽한 결과가 도출되지 못한다. 그래서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보다 나이테가 늘수록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더 느낀다.  대화의 관계에서는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편이다. 세상의 이치에 크게 반하는게 아니라면 때론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단 공감이 대화의 본질일 수 있다. 옳은 말만 하기보단 대화를 이끌어 내는 사람의 심리를 한번쯤은 파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화의 목적이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들으려는게 아닌 위로를 받거나 공감을 얻기 위한 일일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늘 대화에서 상대방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속얘기를 많이 털어놓곤 하는데 제는 나는 이렇게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니즈를 반영하는데 반해 상대에게도 그런 기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부터 해방되어야 대화의 장이 조금 더 유연해 질 텐데 말이다. 결국은 대화를 단절시켜버리고 혼자 삭이는 일쯤으로 마무리가 되다보니 늘 외로움을 곁에 둔 외롭고싶지 않은 자의 발버둥은 더 깊은 외로움의 골을 만들어내곤 한다.


복잡미묘한 인간관계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흥미로우며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일 지언정 일상에 도움을 줄 약간의 스트레스와 유함도 가지고 있으니 땅굴을 파는 일보단 바깥세상의 문을 두드려봄이 어떨지.


웨이트를 한 날의 생채기가 아물며 미세한 근육이 되는 것처럼 인간관계의 상처또 다른 관계속에서 치유될  그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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