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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Nov 19. 2023

비움의 자리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며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아침.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과 보금자리가 옮겨질 짐들이 정리되는 소리들로 가득한 내부는 진짜로 안녕을 고하고 있다. 이젠 새로운 가족들을 맞이할 준비로 새 단장을 시작할 테지.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막으로 3년 가까이 살았던 곳을 둘러보며 이 집에서 함께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잘 있어. 새로운 식구들과도 좋은 추억이 쌓이길.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결혼하고 처음 분양받아 온 집이었기에 감회가 남다르기도 했고 첫째 아이의 설레는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던 곳이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치솟는 금리는 우리 가족의 발목을 잡았으며 그나마 시기에 맞춰 매매가 잘 이루어지긴 한 것 같다. 불과 몇 개월 전이였는데 지금은 맞은편에 새 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쏟아지는 물량으로 거래가 반의 반토막이 났다는 얘길 들은 후론 이렇게라도 매매가 된 게 다행이 여긴다.


다시 사택으로 돌아왔다. 새집에서 살기 전에 5년 넘게 살았던 이곳은 꽤 익숙함이 묻어있다. 근처 자주 가던 카페는 없어지고 친분이 있던 카페사장님을 더 이상 만날 수가 없는 아쉬움 빼고는 인프라는 더 나아졌다. 산업단지가 생기고 교통체증이 만연했던 아침의 풍경은 아주 조금 개선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거리는 꼬리물기를 볼 수 있고 도로는 정비되어 깨끗해졌다.


새집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남편이 오가며 인테리어 작업을 하고 새 옷을 입은 내부는 정리가 되기만을 기다리며 페인트 냄새를 풍기고 있다. 베란다에 달았던 우드블라인드를 부부방에 설치했더니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듯 따뜻한 분위기를 뽐낸다. 싱글침대 두 개를 놓아야 하기에 아이들에게 제일 큰 안방을 내주었는데 이전보다 넓어진 방이 맘에 드는 모양이다. 아이들의 전자기기 사용을 줄이고자 거실에 티브이를 없애고 낮은 책장을 놓았더니 도서관 분위기도 나고 예상했던 콘셉트는 거의 성공인 듯하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는 짐들은 하루가 다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긴 하지만 이참에 남편에게도 미니멀라이프를 제안했다. 짐이 많으면 일단 정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버리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다. 정리되지 않는 공간을 보는 일은 유쾌하지 못할뿐더러 예민함을 끄집어내기에 너무나 좋은 먹잇감이 되므로 정리를 위해서는 짐을 많이 두지 않기로 했다.


생각보다 쓰지 않는 물건, 안 먹는 간식이나 냉동식품들이 꽤 있어서 모두 버리고 비워진 냉장고나 냉동실에는 웬만하면 채우지 않기로 했다. 이 상태로 깨끗해진 냉장고를 보는 것 만으로 너무 행복해진다. 장고가 비워지니 냉동용도로 더 많이 쓰는 김치냉장고를 처분하고 싶어진다. 주방에 있어야 할 김치냉장고를 베란다에 두었는데 손이 잘 가지 않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밖에 두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 일단 안 보이게 수납하는 일이 필요하다. 주방엔 필요한 것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꺼내놓지 않는다. 75리터 쓰레기봉투를 벌써 4번째 채웠는데도 아직 정리는 속도를 못 내고 있다.


비워내는 만큼 마음속 복잡한 생각들도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 아침에 눈을 떳을때 미세하게나마 정리가 되어가는 것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온몸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새로운 근육통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정리된 공간을 보고 있노라면 이까짓 근육통쯤은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제일 난제는 역시 옷이다. 내 옷보다 남편옷이 더 많아 버릴것을 제안했다. 제.발. 계절옷을 정리할때마다 이야기하는 부분이지만 안입는 옷이 더 많기 때문에 드레스룸을 정리하기전에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들 옷을 한꺼번에 사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많이 사게 되고 안입는 옷들이 생겨 나서 적당히 조금씩 사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내 옷이 제일 적다. 그래도 내가 입을 옷이기에 아이템별로 실속있게 사는 편이라 이 정도면 멋내기에도 부족하지 않고 적당하다. 옷에 대한 철학이 있는데 질 좋은 옷을 사고 오래 입는 것이다. 15년 입은 스커트를 잘 입다가 얼마전에 보내주었다. 되도록이면 클래식한 디자인이나 조금의 변형을 주었지만 클래식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디자인이 좋고 기본적으로 한번 사면 10년이상은 입게 되는 것 같다. 


아직 정리의 반도 끝내지 못했는데 버릴게 많아 보인다. 이제는 더 채우고 싶지 않아 졌다. 비워진 공간의 깔끔함이 주는 기분은 생각의 정리에도 도움을 주고 마음의 지식으로 채워나가고 싶어진다. 여백의 미는 디자인이나 일상에서도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보금자리는 미니멀한 일상으로 채워나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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