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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Dec 05. 2023

아픈날이 지나고 나면

독감주의보

가습기의 수증기가 내뿜는 곳에 얼굴을 가까이 대어보며 감기가 빨리 떨어지라고 애원한다. 이튿날까진 테라플루로 견디다가 이건 내가 종종 앓던 감기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라 삼일째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마스크를 벗지 말라고 한다.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의사의 테이블에서 저만치 떨어진 곳에 놓여져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의료진과 다른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멀찌감치 떨어져 앉으니 그제서야 안도하는 것 같은 의사는 병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한다.


감기환자의 대부분이 독감이나 코로나 환자라고 이야기하며 단 검사를 권다. 긴 면봉 보기만해도 벌써 코가 아픈것 같은 느낌이 오는데 저걸 두번이나 찔러야 하다니.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였는데 생각보다 아프지 않게 찔러주서 수월히 지나갔다.


바이러스가 활개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좋지 않은 컨디션에 감정컨트롤마저 되지 않는 날이였다. 평소에 큰소리내며 부부싸움을 하진 않지만 내목소리를 내는 일은 적극적이여야 한다는 생각에 글테러(?)를 보낸적이 있다. 서운한 마음들은 쏟아냈지만 그 뒤에 남는 찝찝함은 어느 것으로도 수습이 되지 않아 더 괴로워졌다.


그리고 찾아온 아픔은 마음의 아픔만큼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까지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모두가 독감바이러스를 맞이하게 된것이다. 부모마음이 다 그런것처럼 대신 아파줄 수 있다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의 아픈 모습 너무 애처롭.


냉전을 유발한 장본인이지만 출장가있는 남편과 통화를 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우리 모두 독감이라 열이 많이 난다고 아빠에게 메세지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저녁쯤 걸려온 남편의 전화기 넘어 목소리가 너무 반갑고 눈물이 났다. 울먹이는 목소리를 애써 참으며 최대한 담담하게 통화를 하고 나니 글테러를 보낸것에 대한 후회가 더 많이 밀려온다.


굉장히 차분하고 온화한데 종종 욱하는 성향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특히 컨디션이 좀 떨어지거나 하는 날엔 감정컨트롤하는 제어장치가 전혀 말을 듣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의 약을 챙겨주고 나니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스팸이 아닐까 싶었는데 같은 번호로 문자가 왔다. 이력서를 넣어놓고 잊고 있었다니. 면접제의였는데 독감환자가 면접을 보러 다니면 바이러스를 퍼트릴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향을 여쭈었다. 그럼 이번주 안으로 가능한 날 보기로 하고 어려우면 줌면접을 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이상황에 너무 감사한 일이다.


약기운을 빌려 고통이 조금 사라지고 밤새 열이 오를수 있는 아이들옆에 앉아 다시금 정신을 차려본다. 태어나서 한번도 걸리지 않던 독감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겸손한 생각으로 바뀌었다. 특히 건강에 대해서는 자만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아픔이 지나고 나면 더 단단해 마음들과 면역력으로  나를 채워 나갈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기로 했다. 가끔 욱하는 성향을 가라앉히려면 무엇보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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