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취업이 1년 미뤄진 나는 영어학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일은 짐작했던 것보다 적성에 잘 맞았고, 특히 매일 만나게 된 초등부 아이들은 내 삶의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어주였다. 그러다 초등학교 4-5학년즈음 여자 아이들에게 외모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는데, 어떻게 답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이어지는 글은 아이들에게 전해줄 화이트데이 편지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시드니반 친구들에게.
얘들아 안녕, 요즘 너희가 부쩍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서 몇 자 적어 보았어. 외모에 대한 선생님의 개인적인 의견이니 너희도 이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외모는 언뜻 중요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정말 그렇지 않아. 우리는 전부 같은 세상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거든. 선생님의 세상과, 서연이의 세상과, 정현이 은서 예린이 태민이 은준이의 세상은 약간씩 겹쳐 있지만 완전히 달라. 세상이라는 건 사람이 주위 환경이나 사람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전부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선생님과 너희들은 각자 주위 환경도 사람 사물도 그걸 바라보는 시선도 다 다르니까.
선생님은 너희가 각자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면 좋겠어. 주위 환경, 사람, 사물, 시선. 네 가지 중에서 너희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적절하게 바꿔가면서.
이 중에서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건 뭘까? 시선 아닐까? 너희가 세상을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바라본다면, 외모가 빼어나든 부족하든 너희는 모두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게 될 거야. 너희 외모가 부족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야! 선생님이 보는 너희는 전부 예쁘고 멋지고 소중해. 다만 너희가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보다, 너희가 직접 바라보는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지길 바라는 마음에 편지를 준비했어.
다른 사람에게 내보일 것을 중요시하며 살아간다면 영원히 불행할 수밖에 없단다. 수억 수천 개의 세상을 만족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거든. 너희는 너희가 바라보는 각자의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더 많이 발견하면 되는 거야. 아름다움은 외모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서. 그리고 너희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너희 세상에 포함시켜 주면서 조금씩 더 넓고 행복한 세계를 만들어가면 되는 거야.
그래서 너희 눈에는 조금 부족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지금의 선생님 모습을 사랑하고 또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어. 오늘은 나에게 뭘 해줄까, 오늘은 내 세상에 어떤 즐거운 일들이 있었나 생각하면서 말이지. 그 안에는 너희들도 있어. 너희가 선생님한테 웃어줄 때마다, 학원에 와서 각자 할 일에 집중하면서 모르는 걸 물어볼 때마다, 선생님은 너희가 모르는 걸 알려줄 수 있어서 기쁘고 그 기쁨이 선생님의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한단다. 그만큼 너희는 선생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됐어. 항상 고마워 얘들아. 앞으로도 힘들고 속상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너희는 가족에게 부모님에게 그리고 선생님에게도 무척 소중한 존재임을 기억해 줘.
타인을 위한 일에 치중하느라 자신을 위한 일에 소홀하지 않길,
앞으로 너희가 살아갈 세계가 선생님의 것보다 더욱 활기 가득하고 아름답길 바랄게.
해피 화이트데이야 얘들아.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