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취업이 1년 미뤄진 나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고민하다 영어학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일은 짐작했던 것보다도 적성에 잘 맞았다. 시행착오를 거쳤고 바보 같은 실수도 했지만 차츰 어엿한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었다.
햇살이 따스해지기 시작한 2월의 어느 날, 웬일인지 출근길 버스에서부터 안온함이 맴돌던 하루였다. 터미널에서 승차한 사람은 나 혼자였고 다음 정류장에서 탑승한 승객도 두엇뿐이었다. 조용한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DJ의 음성이 오늘이 밸런타인데이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학원 친구들에게 작은 간식이라도 준비해 주는 게 좋으려나, 잠시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에게 페레로로쉐를 나눠주고 싶지만 난 지금 긴축재정 상태인걸.’
그렇지만 오늘은 말썽꾸러기 시윤이의 마지막 등원일인 만큼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게다가 소소한 선물을 주고받는 마음이 별 것 아닌 기념일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결국 학원 앞 편의점에서 몇천 원짜리 젤리를 두 봉지 사서 가방에 넣었다.
단돈 몇천 원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값진 소비가 어디 있겠는가 싶어서.
그것만큼 저렴한 행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싶어서.
예상외로 반 친구들은 내가 준비한 선물을 무척 받고 싶어 했다. 가능하면 다른 선생님들과도 행복을 널리 나누고 싶었는데, 전부 아이들에게 줘버리고 말았다.
자신들도 언제든 살 수 있는 젤리를 그렇게 받고 싶어 할 줄 상상도 못 했는데. 시윤이가 욕심내는 걸 참다못한 은서가 한 마디 쏘아붙였을 때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들이 다들 젤리를 받고 싶어 한다는 걸. 이 별 것 아닌 선물을… 내심에 기쁨과 놀라움의 물결이 일었다.
그래서 계획을 바꿨다. 사실 시윤이에게는 마지막 날이니 하나쯤 더 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열심히 공부한 은서와 정현이를 서운하게 만들 순 없었다. 봉지를 뜯어 개수를 세어 보니 정확하게 16개. 오늘 등원한 네 명의 아이들에게 네 개씩 나눠주면 딱 맞는 숫자였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전부 나눠주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더 큰 기쁨을 얻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꼼짝없이 다음 달 기념일을 준비할 수밖에 없게 된 형편을 알아차렸다.
화이트데이에는 더 좋은 선물을 준비해야지. 너희를 향한 내 마음이 담뿍 담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