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에게

by 바닷물
친구의 추천으로 뮤지컬 랭보를 관람했다. 주인공 랭보는 프랑스 시골 마을의 17살 소년 시인으로, 세상을 꿰뚫어 보는 투시자가 되고픈 꿈이 있다. 유일한 친구 들라에와 함께 숲 속에서 살아가던 랭보는 폴 베를렌느의 시집을 보고 그에게 편지를 쓴다. 이후 둘은 파리에서 만나 함께 영국으로 떠나지만 그 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묵혀온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랭보에게 묻는다.


랭보 안녕, 네 삶을 보면서 묻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펜을 들었어.


가장 먼저 존재에 대한 네 고찰이 인상 깊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 네가 다다른 결론은 내가 알던 것과 비슷했어. 인간은 진실된 고통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 비로소 자신이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실감하는 것 말이야. 나는 이걸 스스로 깨닫기보단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나서 알게 됐어. 그러나 생에 대한 의지가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살고자 하는 욕망이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거야? 이건 마치 잘못 끼운 퍼즐 조각 같아.


난 네가 런던에서 계속 폴과 함께 살아갔다면 절대 투시자가 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투시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립할 수 있어야 하거든. 넌 네가 자유롭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라, 그들은 전부 앉은뱅이라 하면서도 문단이 널 인정하길 바랐으니. 정작 너도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말이야. 폴에게 의지하느라 스스로 돈 한 푼 벌어본 적 없던 애송이가.


이젠 네가 나보다 잘 알겠지만 진정한 투시자가 되기 위해 삶에 대한 투쟁은 필수적인 조건이잖아. 투쟁을 계속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니까. 나는 그 투쟁을 통해 우리에게 비로소 힘과 자유가 생긴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또 질문했어. 그렇게 얻은 힘과 자유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일단 힘과 자유를 얻어보기나 해야겠다.


그렇게 삶에 대한 투쟁을 계속해왔지만 사실 나도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어. 해본 것이라고는 아르바이트 두어 개뿐인 애송이야. 그렇지만 자취를 시작하고 스스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힘 정도는 생긴 것 같아. 그리고 또, 99번 실패했을 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일어나는 힘 정도. 나는 유독 남들보다 약하게 태어났는지 아- 이 정도 힘을 얻는 과정도 진짜 힘들었어. 그치만 있잖아 이런 작은 힘 작은 자유라도 나한텐 정말 달콤하더라.


이 달콤한 자유가 고통을 상쇄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어. 난 전장이 익숙하지 않은 초보 싸움꾼이거든. 누군가 내게 삶과 비(非)-삶을 선택하라 묻는다면 지금의 나는 분명히 후자를 택할 거야.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는데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책이야. 이 책은 푸름이 바다의 속성인 것처럼 슬픔은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 도넛으로 태어난 나 같은 사람은 가운데가 채워지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가르쳐 줬고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는 지워지지 않는 슬픔들을 들려줬어. 최근에 유독 힘든 일이 몰려와서 그랬는지 심금이 울리더라.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많이 울어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 그렇게 두 달에 걸쳐 이 책을 읽는 동안 고통이 서서히 옅어지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말이야. 그렇지만 이것도 존재의 이유에 대한 답변은 될 수 없어. ‘어떻게’는 그냥 방식, 삶의 메커니즘을 말하는 것뿐이니까.


나는 아무래도 평생 존재의 근본적 이유를 찾지 못할 것 같아. 그게 인간의 한계 아닐까 싶기도 해. 일단 내가 이해한 삶의 방식대로, 작은 기쁨과 즐거움을 더 누리면서 최대한 덜 고통스럽게 투쟁해 보려고. 행복에 도달하는 과정도 투쟁이잖아. 다행히 이 부분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만큼 내가 자신 있는 영역이야.


랭보, 진정한 투시자가 되어서 내 궁금증에 답해줄 수 있다면 답장 부탁해.

네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


p.s. 아 그리고 삶과 세상에 대해 내가 쓴 글을 몇 편 동봉해 봤어. 하루빨리 네 의견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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