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학생, 절반은 취준생이라는 이름의 백수가 된 후로 여느 때보다 책을 많이 읽고 있다. 다독왕이던 초등학생 시절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다만 요즘엔 작품 속 화자의 입장에 이입하기보다 소설 전체의 구성을 생각하고,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작가의 의도를 온몸으로 느끼려고 노력한다. 잘 짜인 전개를 스스로 해독했을 때의 통쾌함이란! 그건 다른 어떤 오락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 덕분일까.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순간을 실제로 맞이하고 보니, 좌절스러운 상황에 놓이더라도 정작 나 자신은 바뀌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바뀌는 건 오로지 상황일 뿐 나는 여전히 나 그대로다. 때로 게으르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낙천적인 만 24세 대한민국 여성.
소녀라는 말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나이에도 여전히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생각하는 어른 아이.
세 번의 수능을 응시하고 편입까지 도전하며 특정 집단에 속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던 나,
원하는 집단에 속한 뒤에도 소진과 불안으로 노력의 결과를 누리지 못하던 나,
결국 우울증 진단을 받고 졸업과 취업에 실패한 나.
이 모든 나를 경험하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속한 집단이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시점의 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고 한결같이 사랑받아 마땅한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앞으로 인생에서 맞닥뜨릴 수많은 실패들에 청승 떠는 일을 그만두려 한다.
슬픔과 고통은 조용히 지나 보내고, 대신 기쁨과 행복을 요란하게 즐기며 또 오랫동안 기억하며 남은 청춘을 즐겨보려 한다.
인생의 의미에 목매어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더 이상 흘려보내지 않도록.
삶의 의미는 출발점에 선 자의 목표가 아니라,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에 의해 사후적으로 포착되는 것이니까.*
지나온 10년을 돌아보며 지금의 내가 과거 모든 순간의 나를 결국 사랑하게 된 것처럼.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뒤의 나 역시 지나온 삶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길.
* 김영하 <검은 꽃>, 복복서가(2020), 407P 서평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