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교무수첩에 그날 일정을 체크하고 아침 조회를 위해 교무실을 나섰다.
" 김 작가님 되신 것을 축하드려요." 1학년 부장님께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시며 너스레를 떠셨다.
민망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감사 인사를 건냈다.
" 이번 oo중학교 입학 설명회 때, 김 선생님이 발표를 하시는건 어떠세요? 제가 보기엔 누구보다 잘 하실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한 뜻밖의 제안에 적이나 어리둥절하고 놀랐다.
근데 그때 나는 "그럼 한 번 해보겠다."고 흔쾌히 대답하고 말았다. 무슨 배짱이였을까? 아마도 잠이 덜 깨 몽롱한 상태에서 아무 말이나 던진 것 같다.
학생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맘때면 학교마다 학생 유치로 골머리가 아프다. 작은 군 단위에서는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모시고 와야 하는 치열한 눈치 싸움과 신경전이 벌어진다.
그래서 입학설명회를 잘 진행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홍보계에서 이미 마련해준 파워포인트 자료를 받아 보았다. 50장이 넘는 방대한 양이였다. 이것을 20분 내로 발표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머리가 하애졌다.
이제 준비 기간은 3일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 왔다. 이제라도 못하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입 가지고 두말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떻게 이 많은 분량을 아이들에게 인상 깊게 전달할 수 있을지
아이들이 학교에 대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일지
이런저런 생각들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문득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정년이' 속 장면이 번뜩 떠올랐다.
자신만의 색깔로 세상에 나를 표현했던 정년의 모습처럼, 나도 나만의 방식대로 발표를 해보면 어떨까?
갑자기 어떻게 발표해야 할지 답이 나왔다.
바로 나대로 내 방식대로 발표하면 되는 것 이였다.
막상 학생들 앞에 서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긴장되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같이 온 선생님들께서 말 없는 응원을 보내셨지만, 나에겐 전혀 힘이 되지 못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 발표를 시작했다.
" 여러분이 허락해 준다면, 쌤이 말을 편하게 진행해도 될까요?"
나는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평상시 수업하는 것처럼 편하고 다정하게, 웃음과 액션을 겸하여 발표를 진행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조금 긴장했지만, 금세 내 이야기에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히 발표를 끝내니 선생님들께서 환한 웃음으로 엄지척을 해주셨다.
" 김 선생님 엄청 잘 하시는데요, 예들도 엄청 집중하구요, 수고 정말 많으셨어요."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으니 몇 일 고생하고 고민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보상을 받는 것 같아 매우 뿌듯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그들이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도록 노력했던 경험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떤 일이든 나만의 색깔을 입혀 표현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을 담아 소통하는 것을. 앞으로도 다양한 도전 앞에서 겁내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미소가 지어졌다. 중학교로 가기 전, 학교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웠다. 누구를 모방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삶을 기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