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 줄
#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옷깃만 스쳐도 우린 느낄 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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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안 해도 알 수 있잖아
서로의 기분을 우린 읽을 수가 있어 #
<희랍어 시간>을 읽고 어릴 적 많이 따라 부른 텔레파시 노래를 나는 흥얼거렸다.
말이라는 언어의 소통 없이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으로도, 서로가 느끼는 감정으로도 충분히 교감을 할 수 있고,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노래 가사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말보다는 서로를 응시하는 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p55)
소설은 눈을 서서히 잃어가는 희랍어 강사와, 말을 잃어 가는 한 여자가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이번 소설도 예외 없이 한강의 시적 감수성을 십분 발휘한 문장들로 가득했다. 시를 산문으로 쓰면 아마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문장들이 함축적인 의미와 사유를 내포하며, 가슴 안 쪽 깊숙히 파고 들었다.
소설은 남자 여자의 시선을 번갈아 가면서 써내려 간다. 읽는 중 이 부분은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아리송한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15살에 부모님과 독일로 이민 간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여자의 시선으로 잘못 받아 들였고, 여자와 남자 둘다 독일에서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구나라고 잘못 오판하기도 했다.
나는 꽉꽉 함축하여 써내려간 문장들을 몇번씩 되 새기며 읽었고, 이해가 안된 부분은 다시 돌아가 반복하며 읽었다. 특히 그의 독일 친구에게 쓴 편지글은 너무 사변적이고 철학적이여서 한참을 그곳에 머물며 그 뜻을 헤아려야만 했다.
소설 속 남자와 여자는 많이 닮아 있었다. 둘다 선천적이진 않지만 신체적 장애가 있었고, 자라온 환경 속에 아픔과 상처가 있었으며, 성격까지 둘다 조용하고 고요했다.
언어를 온 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일 정도로 예민했고 언어를 감당하지 못해 말을 잃은 한 여인, 점차 시력을 잃어감에 따라 나날이 희미해가는 세계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한 남자.
여인에게는 아이가 있었고, 수년 전 이혼을 했으며, 수차례 소송 끝에 아이의 양육권을 잃게 된다. 그리고 말을 찾기 위해 가장 낯설고 더이상 구어로 사용되지 않는 죽은 언어인 희랍어 강의를 듣게 된다.
아버지의 가족력을 이어 받아 점점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남자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아파하고, 일생의 절반씩을 고국과 타국에서 살아가다가 귀국하여 희랍어 강사생활을 한다.
남자가 사고를 당하면서 안경이 부서지고 위험에 처하게 되자 여자는 그를 돕는다. 시각과 말이라는 감각을 각가 잃어가는 그들이 서로의 기척을 느끼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름답고 슬프게 와 닿았다.
다변하고 복잡한 언어가 아닌 교감과 감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보둠고 사랑하는 모습은 한편의 가슴 절절한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선사했다.
우리가 하루 동안 수많은 말을 하며 살지만, 실제로 온전한 소통은 얼마나 하고 있는 지에 대한 반성을 하게끔 하는 책이었다.
인간이 뱉는 언어는 때론 비수가 되어 타인에게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깊은 공감과 치유는 언어보단 따뜻한 시선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는 듯 하다.
즉, 사람과 사람간, 그리고 다른 무엇과의 소통은 언어 보다 감정의 교류가 우선일 때 그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고 작가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아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