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아이들도 나도 서로에 대한 애정을 떼어 내려 애쓴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짚고 넘어갔을 얘들의 모습도 애써 눈감고 모른척 하며 지나친다.
학년이 끝나가는 마당에 서로 얼굴 붉히고 감정 소모하며 서먹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는 이유이다.
아침 조회 시간. 당일 전달할 상황만 사무적으로 전달하고 일찌감치 나오려는데, 오늘도 다이(가명)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중학교 떄부터 출석 일보다 결석 일이 많았던 아이여서 그런지 아이의 부재는 반 아이들에게 별 감흥을 주지 않았다. 그냥 원래 그 자리에 없던 아이처럼..
교무실로 돌아와 어느 떄처럼 다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한참 울린 후에야 아이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선생님, 너무 배가 아파요. 못 일어나겠어요. 병원 들렸다 가야할 것 같아요." 오늘은 배가 아프다. 어제는 어지러워서 못 일어난다고 , 그 전날에는 구토가 계속 나와서 쓰러졌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이는 마음이 많이 아픈 아이이다. 마음의 병증이 몸으로 표출되어 온몸으로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학기 초 병증이 심해져 두달 간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고, 계속 약물을 복용하고 있지만, 병증은 쉬 좋아지지 않고 있다.
3월 초 다이 할머님과 상담 중 아이가 아프게 된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2년 전 다이가 중학교 2학년 때, 4살 때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친 엄마가 스스로 사망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 쇼크로 상태가 급격하게 안좋아졌다고 했다. 이유없이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구토하고, 설사하고.. 자기가 지금 얼마나 아픈지 온 몸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아이의 사정을 듣고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처럼 다가가려 애썼다. 매일 전화 걸어서 상태를 체크해주고, 기분을 물어주고, 학교를 나온 날은 엄청 기뻐하며 안아주고 토닥여 주었다. 아이도 담임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꼈던지 한참은 잘 나오고 차츰 적응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다른 그림 솜씨로 예쁜 장미를 손수 그려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했을 때는 울컥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잘 졸업해서 산업디자인과를 꼭 가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도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이를 향한 애정과 함께 지쳐가는 마음이 느껴졌다. 마치 아이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듯, 다이의 부재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여전히 다이의 담임 선생님이고, 그는 내가 책임져야 할 소중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어두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다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붙잡고 나는 다짐했다. 아이를 향한 나의 마음이 식지 않도록,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