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요즘 책 읽는 루틴이 자리 잡은 듯싶어 뿌듯하다.
이번엔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이다. 그녀의 소설은 마치 못을 사용하지 않고 홈과 홈을 짝 맞춘 집 같다고 비유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한 번도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늦게나마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소설은 6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집에 여러 가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모습이며, 공동변소와 공동 수돗가는 어렸을 적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80년대를 살았지만, 그때도 변소를 갈라치면 늘 동생이나 언니를 대동했던 기억이 난다,. 그 변소를 책에서 만나니 반갑기까지 한다,
소설은 12살에 어른 아이가 된 강진희라는 여자아이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진희는 어린이 답지 않게 삶에 있어 냉소적이며 자신을 ‘보이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며 자신과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희는 지혜롭고 현명한 할머니, 엘리 트면서 정의롭고 의협심이 강한 삼촌, 나이에 비해 철없고 순진한 이모와 함께 살고 있다. 세 살 때 어머님은 정신병을 앓다 자살하였고, 아버지는 진희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이런 불우한 가정사의 영향인지 진희는 여느 자신의 또래 아이들보다 세상에 대해 더 냉소적이었으며, 굳이 다른 점을 자신의 특별한 점으로 티를 내서 미움을 사지 않을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한 아이이다,
진희가 이렇게 되는 데는 자신의 가족을 비롯한 동네 어른들의 비밀이나 추한 모습 약한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순진하게 사랑을 믿고 한 남자에게 목매달며 집착하다 친구에게 남자 친구를 빼앗기는 철없는 이모, 남자들에게 싹싹하게 대하며 자신의 실속을 챙긴 미스리, 왕년에 잘 나가던 자신을 노래하며 집에 돌아와선 아내를 때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무능력한 광진테라 아저씨, 그런 아저씨와의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이미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환경을 떠나 새로운 환경을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광진테라 아줌마등 진희는 주변 어른들의 사정을 그들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간파하였고, 그들에게서 세상의 이면을 속속들이 간접경험 하게 된다,
12살에 세상을 다 알아버린 진희는 행복이 가면 불행이 온다는 것도 사랑이 오면 이별이 뒤따른 다는 것도 그리고 세상에 많은 일들이 우연적 사건에 의해서 결정지어진다는 것도 알게 된다.
책을 다 덮고 나면 책을 첨 열 때 보았던 표지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뭔가 세상의 비밀을 다 알고 있으면서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똑 단발을 여자아이의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었는데 잊어버렸던 것을 다시 되찾는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12살의 진희보다 38의 진희가 더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냉소로 어른들의 위악을 분석하던 어른 아이가 이제 스스로가 안쓰럽게 여기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