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장모님, 오셨어요? 아. 네, 지금 터미널로 나가겠습니다."
쉬는 날이라 신랑과 꿀같은 늦잠을 자고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부모님께서 시골집 텃밭이 궁금하여 행차하셨나보다.
표현은 서툴지만, 늘 싫은 내색없이 나의 부모님을 위해 기꺼이 기사를 자처해주고, 엄마의 삶의 낙인 텃밭을 살뜰히 살피는 신랑에게 참 고맙다.
내가 거주하는 곳은 군단위고, 도시에 사시는 부모님께서는 도시 아파트 생활이 적적하고 답답하실때는 종종 이곳에 오신다. 어쩌다 시골집을 세컨하우스로 장만한 후엔 이곳은 우리 친정 가족을 위한 별장이 되버렸고, 나의 엄마의 놀이터가 되었다.
본인이 심고 싶은 가지각색의 푸성귀를 빈공간 없이 텃밭에 심으시고, 자식 돌보듯 애정으로 살피시어, 결국 자식들에게 나눠주며 세상 행복해하시고 흡족해하신다.
오늘은 요즘 속좀 섞이는 배추 녀석들이 잘 크고 있는지, 들깨는 잘 여물고 있는지 궁금해서 살피러 오신듯 하다.
평소 부모님이 오셔도 직장다닌다는 핑계로 모시고 주변 나들이도 가지 않던 나는 오늘은 왠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붉은 상사화가 가득 피어있고,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어우러진 산책로로 향했다.
상사화는 이미 시들어서 못내 아쉬었지만, 오랜만에 막내딸과 나온 나들이가 마냥 좋으신지, 부모님의 얼굴이 밝으시다.
두분이 나란히 걷는 모습이 참 다정해 보인다.
연신 티격태격하시면서도 늘 친구같이 동지같이 서로를 바라보고 챙기는 모습에서 사랑이라는 두글자의 무게감과 진중함이 느껴진다.
구부러진 몸과 뒤뚱한 걸음거리, 얼굴 가득 주름은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는 세월의 정직함을 말해주지만, 내 머릿속에 부모님은 여전히 젊고 아름답고 멋지셨던 45세에 멈춰있다.
마냥 철없는 아이로만 여겼던 막내딸이 이제 내년에 20살이 되는 장성한 딸이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도 받아들기 힘드시리라.
세월이 좀만 더디 흘러서 현실과 마음 속 시간의 속도가 비례하면 좋으련만. .
누구에게나 공평한 하나의 사실은 누구나 늙고 죽는다는 것이다.
나도예외없이 늙어가고 있고 죽음을 향해 가고있다.
우리는 늙어가는게 아니라 익어간다는 노랫말처럼 오늘도 나는 더 익어간다. 무게있고 온숙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