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 Jan 03. 2024

99g은 100g이 아니야!

17년 지기와 난데없는 베이킹 논쟁


    17년 지기 친구 P와 예전에 제빵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때는 오히려 대형 반죽기와 작업대 등 장비가 풀세팅 되어있다 보니 뭔가 헝그리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영혼 없이 제빵을 배웠다. 사실 발효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제빵보다는 제과에 더 관심이 갔었다. 결국 정기적으로 부모님 동료 분들 간식만 갖다 드리고, 성취감 없이 나의 제빵기가 끝났다.


99g은 100g이 아니야


    부질없던 나의 제빵기가 10년이 지나고...

내가 만든 빵을 먹고 관심을 보이던 친구 P가 베이킹을 하러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 하던 베이킹 작업에 한 명이 붙으니 오히려 빠르고 순조롭게 끝날 것만 같았다. 기대와 달리 팀플은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5분 만에 깨달았다.



"아몬드가루 100g 넣어야 해"

    말이 끝나자마자 저울에 97g이 보였고, 바로 3g을 더 넣자고 했다. 친구는 3g정도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머지도 그렇게 조금씩 변경되면서 맛이 달라질 것만 같다.


"3g 더 넣자. 나중에 이런 게 쌓여서 맛이 바뀌는 거야"

    그때 조금 더 넣자 99g이 되었고, 나는 1g만 더 넣자고 했다. 친구는 그냥 하자 답답해했지만 나는 100g을 꼭 맞추고 싶었다.


"99g은 100g이 아니야! 레시피 똑같이 따라 해도 저 맛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데..."

    결국 100g을 맞추고 나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계량을 할 때마다 의견이 부딪쳤고, 나중에는 각자 분담해서 내가 계량을 하고, 친구는 반죽을 하게 되자 작은 평화가 찾아왔다.



    레시피에서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이렇게 설탕에 꿀까지 넣다가는 혀가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탕을 반만 넣자는 친구 의견에 나도 동의하게 되었다. 레시피에 대한 정량 집착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친구와 계량의 적정 오차범위를 정하게 되었다.


   처음에 고집을 부리던 나는 친구와 베이킹을 하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1차 반죽

설탕 정량 계량 후, 너무 달아서 물릴 정도였다.


레시피 정량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2차 반죽

설탕 1/2 계량 후, 적당히 달고, 졌다.




    제과를 혼자 하는 것도 좋지만 친구와 함께 하면서 친구에게 배운 점도 많았고, 대화하면서 만드니 더욱 이 취미가 즐겁게 느껴졌다. 사실 아직도 혼자 베이킹할 때는 정량에 집착한다.



    100g 목표에서 1g 놓쳤다고, 달라질 것은 크게 없는 것 같다. 올해는 더 유연한 마음가짐으로 베이킹을 포함해 다양한 것들을 시작해 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야근밭에서 피어난 베이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