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뭉개요

『이해인의 햇빛 일기』를 읽고

by 돈끼호떡

- 조금 구체적으로 쓰는 건 어때요? 관념어는 조금…


글 모임에서 관념어는 구름이었다. 잔잔하게 내려와 문장을 희미하게 물들였으니. 마음을 생으로 꺼낸다면 아주 사소한 일부터 수레에 실어야 했다. 감정이 될 때까지, 얼마나 구체적인가,라는 물음은 얼마나 기술적이냐의 문제였다. 어떤 마음에는 설계도가 필요했다.


작은 기쁨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닌

사랑의 수고임을

오늘도 새롭게 공부하면서!

「혼자 웃는 날」 中


시인 낭독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존경하던 대학 선배로부터 권유를 받은 적이 있었다. 조만간 시인 낭독회가 있으니 한 번 가 보는 게 어떠냐고.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분의 배려를 우물쭈물 거절했던 게 아직도 마음에 남는다. 그렇지만 시가 아닌 방식으로 시인과 소통하고 싶지 않았다. 타인의 모든 걸 알아내면 흥미가 사라지듯 시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게도 만나고 싶은 시인이 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얼굴만 확인하고 헤어지고픈 사람이. 이해인 수녀님이다. 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뭉개져 있다. 이 감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햇볕이 온몸을 안아주는 느낌? 눈으로 읽으면서 눈을 감고 있는 느낌?


글도 싱겁게 쓰고

말도 싱겁게 하고

용서도 싱겁게 하네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도

짜지 않게

「싱겁게 더 싱겁게」 中


누군가를 보듬는 행위도 일이 되는 순간, 사람이 사라졌다. 그런 상황에서는 해야 할 과정과 끝맺는 업무만이 체계적으로 맞물렸다. 아주 사소한 약속마저 인위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나는 모든 문장을 의심했다. 유려한 문장 뒤에는 무엇이 얼마나 촘촘하게 얽혔을까, 하고.


불신은 수녀님의 시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지그시 가라앉는다. 이 온화한 포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마음은 사랑이나 행복만이 아니다. 이 마음은 슬픔이나 외로움만도 아니다. 이 마음에는 설계도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짓눌린다. 흩어진 마음이 어느새 하나로 뭉친다. 대체 뭘까. 이 불가사의한 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물망초」中


마음을 전하려 몇 번이나 마음을 쪼갰을까. 시집을 덮고 눈을 감는다. 뭉친 마음이 무거워 이걸 있는 그대로 꺼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이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을 누를 수 있다면, 그래서 그의 마음이 뭉친다면… 나는 기도한다.


참고서적: 이해인, 『이해인의 햇빛 일기』, 열림원,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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