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가

『경험의 멸종』을 읽고

by 돈끼호떡

“너는 인간의 감정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없다고 믿고 싶어. 아니, 없어야만 해.”


지하철은 저녁에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침통한 표정으로 대학 동기에게 토로하고 있었다. 언어로 매개되는 마음을 더는 믿을 수 없다고. 그런 말을 꺼내게 된 건 오전 수업 때문이었다. 어떤 책을 비평할지 각자 발표하는 시간에 나는 인공지능이 썼다는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꺼냈다. 호기심에, 강의실에 모인 이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컴퓨터에 지능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였다. A4 한 면을 두 단으로 나누어 시인의 작품과 인공지능의 결과물을 인쇄하였다. 누가 썼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더 잘 쓴 시를 골라 보세요.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에 손을 들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러자 재미난 발표를 했다는 뿌듯함과 무언가를 알아버리고 말았다는 어떠한 실망감이 뒤엉켰다. 우리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의 선택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인공지능의 결과물은 생각보다 재밌었으므로.


“인간의 조건이 아닌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p.16)


“누가 썼느냐는 이제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지.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느꼈던 울림이란 대체 뭐였을까. 우리는 진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나?”


역에 도착하자 동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객차가 흔들리는 대로 흔들렸다. 머지않은 미래에 AI 코너가 생길 거라고. 어느 뉴스에서는 저자가 인공지능이었음이 들통나 논란이 일어날 거라고.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피할 수 없는, 또 필요한 흐름이라고도 생각한다. 어쩌면 사람다운 작가가 데이터보다 선명하게 나타날지도 모른다. 인간이 알고리즘에 매료된다는 게 불만이었다. 개인의 감정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데에 공감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는 모두가 고유한 존재라고 굳게 믿어 왔는데. 똑바로 서지도 못하는 A4 한 장 때문에 나는 인간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결국 타인이 어떤 느낌인지 파악하는 데에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그들의 피드를 스크롤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테니까.”(p.196)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람과 어떠한 방법으로든 재회하는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연결’이 이루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점에서 홀로그램이나 VR, AI로 복원된 목소리는 분명 유용하다. 하지만 그 만남을 대화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타인을 어떠한 장소에 소환하려면, 그의 경계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의 기준이 정밀해지려면 존재 자체에 어떠한 낭비도 없도록 효율적으로, 완전하게 분석해야만 한다. 그렇게 완성된 자에게 과연 나아갈 빈틈이 있을까.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우연한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말했다지만 과잉 설계의 시대에는 우연한 기회가 누구에게도 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우연에 맡겨지지 않기 때문이다.”(p.308)


나는 그동안 기형도 시인의 「안개」가 언제쯤 걷힐지 궁금했다. 그 자욱한 안개가 사라지는 날, 멀리서도 서로를 알아볼 수만 있다면 의심도 옅어지지 않을까, 하고. 오늘은 그 안개가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인공지능이 눈을 찡그릴 만큼, 아주 조금만. 「안개」는 아직 살아있다. 그러나 「안개」가 더는 「안개」가 아니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예감이 든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를 수 있을까?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참고서적: 크리스틴 로젠, 『경험의 멸종』, 어크로스, 2025, 인용 p.16, 196, 308.

「안개」,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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