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는다는 것의 역사』를 읽고
일본에서는 천재지변과 기근, 천연두가 기승이었다. 불심이 깊었던 고묘 황후는 부처님의 자비로 중생을 구하기로 한다. 귀천을 불문하고 1,000명의 더러움을 씻겨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p.118)
그날은 요양원에서 목욕이 있었다. 생활실에서 다용도실까지는 걸어서 채 1분도 안 되었다. 유리문은 일부러 열어 두었다. 목욕을 마친 어르신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문을 여닫는 사이에 시간을 버리지 않도록, 너는 그 짧은 통로에 서서 혹시 모를 사고를 염려했다. 휠체어를 탄 어르신이 얇은 요로 몸을 간신히 가리며 생활실로 돌아갔다. 이렇게 수치스러울 수가. 어르신의 말씀이 순간 복도를 울렸다.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은 당장이라도 증발할 것 같았다.
언젠가 너는 검은 봉투를 쥐고 빈 생활실에 입장했다. 그곳에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매트리스 커버는 깨끗했고, 요는 구김이 없었다. 네가 묵례하는 동안 먼지가 쌓이는 소리가 들렸다. 수납장 위에는 약통이 있었고 흔들어 보니 꽤 두툼했던 거로 너는 기억한다. 햇살은 그 방에도 기어이 창을 뚫고 들어왔다. 분명 한가로운 오후였는데 너는 춥다고 말했다.
그리스인들은 몸을 찬물과 뜨거운 물에 교대로 담근 후 기름을 온몸에 발랐다. 그다음 호미처럼 구부러진 금속 도구, 스트리절(Strigil)로 몸을 긁어냈다. (p.20)
어제의 온도도 모른 채 너는 길가에 말린 낙엽을 밟았다. 적당히 구운 나뭇잎은 맛있을 거 같아. 발끝으로 낙엽을 뒤집으며 예쁘게 마는 방법을 생각했다. 밤바다를 가르는 보트 안에서 너는 긴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엄마는 뒤에서 너를 안아주고 하늘은 긁어낼 수 없는 별로 가득했다. 팔라우에서의 추억, 아름답게 말린 풍경은 밟힐 일이 없으니 참 다행이다.
고시원, 쪽방촌, 옥탑방 등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 계층은 가정 내에 편히 목욕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아 도시 안에서 공중목욕탕을 찾아 헤맨다. (p.252)
아르바이트를 끝내니 늦은 저녁이었다. 횡단보도에 서서 너는 동사한 낙엽을 보았다. 그 죽음은 가볍다 못해 바람에 쉬이 날렸다. 자동차가 바닥을 쓸고 나면 도로는 가로등이 비추는 작은 수술대였다. 낙엽은 그 아래에서 오래도록, 벗겨낸 때를 말리면 저렇게 될 거라고 너는 상상했다.
아침에 끓였다던 김치찌개는 차가웠다. 너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고, 유리 냄비에서 작은 기포들이 끓어올랐다.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났다. 늦은 저녁을 먹고 너는 또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고, 작은 기포들이 김치 사이를 헤엄쳐 올랐다. 몇 도인지도 모른 채 너는 오늘을 씻었다.
참고도서: 이인혜, 『씻는다는 것의 역사』, 현암사, 인용 p. 20, 118,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