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수식어도 없이 행복하기를

by 진주

가끔 하소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화나는 일이 있거나 울적할 때. 뜻대로 일이 안 풀릴 때, 답을 찾고 싶을 때. 예전에는 이 마음을 가까운 사람에게 모조리 풀었던 것 같다. 100%는 아니지만 거의 항상, 솔직하게 모든 일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동료, 때로는 남자친구, 때로는 엄마에게. 도움이 될 때도 많았고 미칠 듯이 흔들리는 마음속의 거센 바람을 멈추게 하는데에 효과도 있었지만 지금은 최대한 나 혼자 모든 요동을 품기를 지향한다. 타인에게서 답을 구하는 것은 빠르고 직접적이고 신나지만, 독립적이며 강인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성장판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이 내 모든 슬픔, 불안을 내가 느끼는 것과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결국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가시지 않는 목마름이 혀끝에 남아있는 듯했다. 내가 온전히 감정을 소화할 때,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불안과 고뇌를 그만큼의 동일한 에너지로 애써 막아볼 때. 고독함이 반드시 동반되는 이 과정을 훈련해 나갈 때, 그날의 퇴근길 위에서 나는 내가 아주 조금씩, 손톱이 자라듯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미하지만 확실하게 단단해지고 있다는 느낌. 물론 가끔씩 타인의 조언과 에너지가 필요할 때가 있고 그 에너지를 공유하면서 성장하는 순간들도 있으나, 둥지 위에 짹짹거리고 앉아 늘 타인의 온기와 단단함에 기대어 일을 처리하고 싶었던 미숙한 자아에서 조금씩 탈피하는 느낌이 내게 필요했다.


감정을 다스리려면 일단 흔들려야 했다. 마구 흔들릴수록 고요한 내면의 지혜를 찾아 깊게 잠수했다. 호흡을 찾는 일. 내가 나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나의 어둠과 밝음 모두, 나의 불안과 행복 모두, 내가 마음에 드는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 모두 사랑하는 일. 내가 나임을 떳떳해하는 일. 숨지 않는 것, 타인보다 나에게 하이라이트를 비추는 것.


누군가는 이미 깨달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그 고요하고 단단한 공간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그 길의 끝에서 마주한 거울 속에 비친 나다운 나를 보며, 그 어떤 수식어도 없이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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