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은 글이 되고, 걸어갈 길은 꿈이 된다

걸어온 10년, 걸어갈 10년

by 진주

누군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를 심오한 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때론 글쓰기 자체를 하찮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글쓰기를 하는 이유에 의문을 두는 사람도 있었다. 무심하고 날 선 시선들을 뒤로하고 글을 계속 써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내면으로 눈을 돌렸을 때 깨달았다. 나는 특별히 설명할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도 '어차피'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글쓰기의 시작, 연애소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건 아주 작은 꼬맹이였을 때부터였다. 어떤 영감과 감정을 춤으로 풀어내고 싶다면 타고난 춤꾼일 것이고, 그림으로 풀어낸다면 타고난 화가일 것이다. 나는 볼펜을 잡았다. 당시 좋아하던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한 연애소설을 공책에 퇴고 없이 쭉 적어나갔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 소설을 적어나갈 때 가장 몰입했고 즐거웠다. 때로는 소설 속에 적을 이야기가 뇌에서 마구 넘쳐흐르는데 공책이 집에 있는 탓에 바로 이어 적을 수 없어 그냥 내용을 계속 외워서 가기도 했다.


공책 1권 분량의 소설을 열심히 써놓고 다신 읽어보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내가 열심히 쓴 글을 다시 읽어보지 않는 편이다. 이따금씩 읽어볼 때도 있지만 왠지 당시엔 매우 열광하며 글을 써내려 갔음에도 불구하고 쑥스러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고쳐야 할 부분도 보이고 읽다 보면 그냥 찢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창작자의 숙명인가.


여하튼 나는 글을 쓰는 데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꼬맹이 시절 적었던 소설집은 그렇게 넣어두고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그 공책을 발견했다. 나 스스로도 다시 읽어보지 않았던 그 소설을 엄마가 우연히 읽은 것이다. "진주야, 이거 네가 썼니?" 엄마의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내가 감정과 생각을 글로 풀어쓰는 재주가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란 듯 보였다. 어쩌다 소설을 들킨 이후,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지만 어떤 이야기를 상상해서 쓰기보다 내 이야기를 쓰고 싶던 시기가 찾아왔던 것 같다.


나만의 역사 기록, 10년

나는 방학 숙제로 시작했던 일기 쓰기에 무성의한 편이었다. 오늘은 맑음, 밥 맛있게 먹었다, 티브이를 봤다, 산책을 나갔다 처럼 대강 이야기를 지어냈다. 방학 숙제로 적는 일기는 진짜 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제출용이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대신 진짜 일기를 따로 적었다. 누군가가 보고 검사할 것을 생각해 말을 꾸며 쓰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공간에서 기록을 이어나갔다.


방학 숙제로 한 일기 쓰기에 어떤 코멘트가 달리고 칭찬 도장이 붙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나는 타인의 인정과 칭찬보다 내가 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내면에서 퍼올린 즐거움 찾기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이었나 보다. 일기를 그렇게 꼬박 10년을 썼다. 매년 혹은 다이어리를 다 채울 때마다 서점에 새로운 일기장을 고르러 가는 발걸음이 나비처럼 나풀나풀거렸다.


분홍색 일기장, 고양이 일기장, 어린 왕자 일기장, 비밀 자물쇠가 있는 일기장, 꽃무늬 일기장... 수 권의 일기장을 꼬박 매일 꾸준하게 채워갔다. 의 매일 밤 9시부터 약 1시간 정도 일기를 쓰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였다. 당시 쓴 글들을 보면 나는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미숙하고 어린 시선이었다는 게 느껴진다. 그 시절의 나만이 지어낼 수 있는 풋내음 그 자체로 가치가 충만한 자료인 셈이다. 내겐 돈이나 어떤 물건보다 내가 10년 간 쌓아온 일기장이 제1호 보물이다.


디지털 글쓰기의 매력에 빠지다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글쓰기가 바뀐 건 대학생 무렵이었다. 당시 내 감정은 초등학교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넓고 섬세한 단계를 오르락내리락했던 것 같다. 그런 감정을 모두 묘사하기엔 공책의 페이지가 수없이 넘어가야 했고 글을 쓰는 시간도 평균 2시간은 걸려야 했다. 손도 아프고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키진 않지만 디지털로 넘어갔다.


나는 아날로그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컴퓨터 안에 일기를 쓴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키보드 자판의 속도는 연필로 하나하나 쓰는 것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계속해서 디지털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또 몇 년간 글을 썼다 지웠다 하며 나의 페이지가 쌓여갔다. 글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글을 쓰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혹 나쁜 일이 생길 때 겪는 감정 에너지는 글의 감칠맛을 배로 끌어올리곤 했다.


또한 어두운 시절을 걸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정밀한 감정을 글로 담고 나서 다시 한번 쓱 읽어보면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것이 엄청난 쾌감이었다. 글쓰기는 연금술처럼 내 안의 씻어 내리고 싶은 감정들을 작품의 원동력으로 변신시켰다. 막상 말하려고 하면 설명하기 힘든 생각들이 하얀 페이지 위에선 활어처럼 날뛰었다. 나의 가장 큰 무기는 글쓰기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어떠한 상황도 글로 옮겨 내 삶의 한 역사로 박제시키는 마법을 부릴 줄 알았다.


어떤 것이든 그냥 흘러가게 두기보다 낚아채, 기록을 이기지 못하는 기억의 한계를 뛰어넘어 '언젠가 나는 이런 삶을 살았고 즐겼고 이겨냈으며 여기에 존재했다'라는 사실이 잊히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일기장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는 걸까. 모르긴 하지만 결국 글쓰기는 나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로 향하는 행위 아닐까?


작문 권태기가 오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가 싫어졌다. 글을 쓰는 것 자체에 피로감을 느꼈다. 당시 내 생각은 토네이도 같았는데 때론 고요했지만 때로는 거리의 낙엽을 모두 휩쓰는 바람처럼 싱숭생숭한 마음이었다. 이 모든 생각을 글로 잡아내 쓰며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피곤했다.


한창 글쓰기가 좋았을 땐 그렇게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 희열을 느꼈던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가 싫어진 이유도 내 생각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정리하기가 싫었다. 마구 어질러진 상태 혹은 그냥 흘러가는 상태로 생각을 버리고 싶었다. 비우고 버리는 과정이 절실했다. 글을 쓰면 뭐 해? 누가 본다고? 그렇게 쓴 글을 휴지통에 버렸다. 글쓰기에 회의감을 느낀 상태에서 몸과 마음이 지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런 시기는 고작 몇 개월을 지나지 않았다. 나는 글쓰기를 밀어내려고 애썼지만, 글쓰기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왔다. 작문을 하는 데엔 많은 시간이 드는데 직장인으로서 해가 거듭될수록 퇴근 후의 피로감과 쉬고 싶은 마음 사이에 글쓰기를 들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작가가 될 것도 아닌데 뭣하러 글을 써? 됐어, 그냥 생각을 흘려버리고 하루를 살다 보면 그냥 살아져.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애써 글을 밀어냈다.


밀어냈다는 건 글이 언제나 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알겠지만 나는 다시 글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때는 이전보다 더더욱 글과 내 삶 사이의 필연성을 느꼈다. 그래서 늘 지켜만 보던 '브런치스토리'에 작가 신청을 했다.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한동안은 혼자 글을 썼고 다양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읽어볼 기회가 없었던 만큼, 브런치스토리에서 만난 여러 작가님들의 글은 반갑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힘들 때 글을 쓰기보다 이곳의 글을 많이 읽었다. INPUT을 많이 해야 OUTPUT도 풍성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어느 기간 동안은 글을 수집하듯 책과 에세이를 마구 읽었고 또 어느 기간 동안은 마구 쏟아내는 일만 했다.


용기를 내어 작가 신청을 한 그 밤, 나는 이전과 다른 벅차오름을 느꼈다. 무언가 새로운 페이지가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작가 승인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그 낮.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서 말라가던 나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글을 쓰고 너만 보면 되지, 왜 사람들과 공유하려 해? 혹시 관종이야?

그런 날 선 질문... 작가라면 한 번쯤 마주할 각오를 해야겠지. 나는 그런 사람들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지 미리 곰곰이 생각해 봤다. 글을 쓰는 과정은 보통 INPUT -> OUTPUT에서 끝난다. 하지만 그 끝에 SHARE (공유) 과정이 있다면 작가의 성장 가능성은 더욱 무한해진다.


내 글이 누군가의 영감이 되어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을 겪으며 또 한 번의 성장을 이루는 것. 나의 지식과 경험을 내 서재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나누며 공유하며 위로받고, 응원하고 더 나아가 내 이름을 남기는 것.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존재니까. 내 글이 더 빛날 수 있는 공간 '브런치스토리'에서 앞으로의 10년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 어떤 수식어도 없이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