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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누가 사무실 좀 시끄럽게 만들어줘

by 진주

우리 회사는 주로 부서 간에 전화로 업무를 처리한다. 사실 좀 별로다. 그냥 이메일로 하면 안 될까. 그냥 화상회의 이런 걸로 하면 안 될까. 아님 그냥 메타버스 이런 데서 만나면 안 될까. 내성적인 나는 어릴 적부터 전화를 하는 게 싫었다. 치킨집 배달 시키기, 콜센터에 전화하기가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전화하기 전에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 시뮬레이션을 한 다음, 할 말을 종이에 적어두고 전화를 걸었다. 근데 회사에서 전화를 매일 하고 있다니. 그만큼 성장하고 스스로를 이겨낸건 좋지만 아직까지도 전화는 그다지 달갑지 않다.


내가 가장 곤란할 때는 '이제 전화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무실이 조용한 경우이다.

'제발... 제발 누가 소리를 내줘' 생각하며 기다린다.


....

...

RRRRRR


어딘가에서 전화가 울렸다. 지금이야!!!!!!!!!!

나는 재빠르게 내선번호를 입력하고 전화를 건다. 내 목소리가 묻힐 수 있는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다. 막상 전화를 하면 또 괜찮은데, 전화 걸기 전까지가 너무 눈치싸움이다. (혼자서만ㅋ)


그렇지만 계속해서 전화 벨소리를 기다리거나 주변이 웅성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보통은 어쩔 수 없이 적막을 깨고 전화를 걸기도 한다. 근데 내 주변에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은지, 내가 전화를 하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또 전화를 건다. (야 너도?...)


사무실 전화는 내겐 아직 딜레마다.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지만 그냥 밥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매일 이겨내고 있는 것. 근데 내가 전화를 무서워하는 건 '내가 전화를 잘하지 못한다'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1인 사무실에 앉아서 전화를 하라고 한다면 스스럼없이 할 것 같다. 실제로도 그렇고. 근데 다 같이 모인 곳에선 왠지 눈치가 보인다. 역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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