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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03. 2023

사실 꽤 오랫동안
너가 틀렸길 바랐거든

영화 <마음> - 김태영 감독

마음이라는 간판이 새겨진 카페. 예원은 현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원일과는 잘 지내냐는 예원의 말에 재권은 아주 가끔 본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재권의 영화를 봤느냐는 질문에 현진은 요새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재권은 최근 극장에 영화를 걸고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러던 도중 현진이 카페의 간판을 가리킨다. 마음. 마음은 재권이 찍은 단편영화이다. 현진은 마음이 재권의 영화 중에 최고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왜 연락도 안 하냐는 예원의 말에는 현진은 번호조차 없다고 이야기한다. 현진과 재권은 사이가 좋지 않을 것일까. 현진이 연락처에 재권을 검색해도 정말 번호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공간은 마음에서 차 안으로 바뀐다. 차 안에는 곧 결혼을 앞둔 재권과 유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얼마 전 유경은 남산에서 우연히 자신을 본 줄 알고 착각한 지인이 전화를 걸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재권은 유경은 차를 타고 함께 극장에 가서 재권의 영화를 본다. 재권이 말하는 음성 위에 피아노 노래가 흐르고 예원과 원일의 모습이 지나간다. 


원일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으로 상반기에 진행되는 시나리오 공모전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자신이 쓰는 글이 마음에 들지 않던 원일은 결국 시나리오를 제출하지 않는다. 원일의 연인 문주는 시나리오를 내지 않는 그를 나무란다. 실패하더라도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말하는 문주. 이에 반해 원일은 자신의 글이 솔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이들은 서로 다툰 채 밤을 맞이한다. 



다음날 원일은 예원을 만난다. 예원은 현진에게 받지 못한 재권의 번호를 받는다. 예원은 현진에게 물어봤듯 재권의 영화를 봤느냐고 물어보지만 원일 역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듯하다. 원일은 현진이 그랬듯 재권의 영화 중 최고는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원은 같은 말을 한 현진을 생각하며 웃는다. 그리고 예원은 <마음>에 자신이 나오는 장면은 아직도 보지 못하겠다고 고백한다. 


영화 <마음>은 재권의 단편영화 <마음>을 둘러싼 과거의 관계들을 그린다. 함께 영화를 만들던 이들은 이제는 번호조차 모를 정도로 서로를 잊고 지내고 있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그들이 함께 만들던 영화에 대한 마음뿐이다. 예원은 카페에서 재권을 만난다. 이들은 한때 연인이었던 듯하지만 예원은 재권을 향해 비겁하다고 나무란다. 



원일과 현진은 재권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다. 그런데 원일은 현진에게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진의 간곡한 부탁에 함께 이들은 같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재권의 영화가 끝나고 원일과 현진은 씁쓸한 얼굴로 술을 기울인 뒤 다시 서로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원일은 재권에게 전화를 건다. 너의 영화를 보았고 정말 좋았다면서 원일은 얼마간 재권을 시기하던 자신의 모습을 고백한다. 


“사실 꽤 오랫동안 너가 틀렸길 바랐거든.”


원일은 재권의 새로운 영화를 단편영화 <마음>보다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과는 다르게 진실을 추구하는 게 느껴졌다고. 자신은 그게 그렇게 어렵다고도. 



원일은 전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다. 문주는 원일을 기다렸다가 그를 포옹해준다. 어젯밤의 싸움 때문일까 문주는 원일의 손에 시 한 편을 들려준다. 


김수영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김수영의 시 <봄밤>은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는 전언으로 시작한다. 이는 영화를 찍는 일에 대한 부담과 친구 재권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원일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시의 첫 소절이 원일의 입에서 발화되는 순간 영화의 한 쇼트가 불현듯 머릿속을 지나간다. 원일이 재권의 영화를 보러가서 발견한 재권의 영화 <만설>의 포스터 안에 새겨진 글귀이다.



 “정말 아름다운 것 중에 서두르는 건 없어요.” 


만약 원일이 현진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면 문주가 건넨 김수영의 시를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과거의 마음을 통과한 다음에야 원일은 봄밤을 제대로 마주한다. 영화는 <봄밤>을 읽는 원일의 목소리 위로 예원과 재권이 보내는 밤의 모습을 비추면서 끝이 난다. 그 순간 이들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나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듯한 영화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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