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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03. 2023

시들어가는 괴수, 리바이어던

다큐멘터리 <리바이어던 - 살아 숨쉬는 전설> - 강범철 감독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혼란과 무질서의 상징인 괴수다.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이기심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인간을 구원할 권력과 통치의 상징을 리바이어던으로 칭했다. 포경 활동이 일어나기 전 한반도에서는 지금 발견할 수 있는 고래들보다 훨씬 큰 대형고래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움직이면 세상이 흔들릴 정도로 거대했다며 영화는 고래를 ‘리바이어던’이라고 이름 붙인다. 


영화 <리바이어던 - 살아 숨쉬는 전설> 중


그러나 리바이어던으로서의 고래의 지위에는 의구심이 든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는 여러 종류의 고래들의 분류도가 새겨져 있다. 이는 신석기인들이 그린 것으로, 주로 작살을 이용하여 고래를 사냥한 뒤 벽화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돌벽에 새겨진 이 그림은 혼돈과 무질서 안의 통치자, 인간을 복종시키는 질서와 권력의 상징이 고작 돌칼을 쓰고 움집을 만들어 살던 신석기인들에 의해 널리 사냥 당했음을 말해준다. 


영화 <리바이어던 - 살아 숨쉬는 전설> 중


수천 년이 지난 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반도 근처의 고래 남획은 19세기 말 러시아와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에 의해서 시작됐는데, 해방 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포경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포경 활동은 법으로 금지됐지만, ‘우연히’ 잡히는 고래의 수는 연간 2000마리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아기 고래가 작살에 찔리면 엄마 고래는 그 주위를 떠나지 못 하는데, 온통 핏빛이 된 바다에서 아기 고래의 주위를 맴도는 엄마 고래는 사람들에게 그저 쉬운 사냥감일 뿐이다. 


영화 <리바이어던 - 살아 숨쉬는 전설> 중


<리바이어던 – 살아 숨쉬는 전설>은 7분 가량의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간단하게 한국 고래의역사와 고래가 사라져가는 현실을 그린다. 고래의 멸종 위기를 그리는 이 영화가 고래를 ‘리바이어던’이라고 칭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혼란과 무질서를 누르고 통치와 질서를 만들어내는 리바이어던은 다시금 우리의 탐욕과 이기심에 그 지위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만 같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고래 울음소리는 남획과 멸종 위기의 현실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괴수의 울음소리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제갈서영


** 다큐멘터리 <리바이어던 - 살아 숨쉬는 전설>은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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