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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03. 2023

부를 수 없는 그 이름

영화 <그 이름> - 박민지 감독

최근 동성부부에게도 다른 사실혼 부부와 같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OECD 국가 중 동성애 관용도가 하위권에 머무르는 성소수자에 대해 배타심이 강한 한국에서는 이례적인 결과인 것 같다. 동성커플이 법적으로 혼인하지 못하고 동거를 하며 사실혼 관계를 가짐에도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해 문제가 생겨왔었는데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한 발자국씩 해결해나가는 길이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성정체성조차 밝히지 못하고 평범한 척하며 살아가는 성소수자들도 많다.



지훈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긴 채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여타의 가정처럼 부인과 예쁜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과거의 연인이었던 태일이 찾아온다. 단란하게만 보이던 삶을 살아가던 지훈은 혼란스러워진다. 아무렇지 않게 지훈의 가정 속에서 저녁 식사도 함께하는 태일을 지켜보며 자신의 과거가 탄로날까 두려운 감정과 동시에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연신 혼란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지훈의 감정을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태일은 지훈의 부인의 질문에 묘하게 답변을 이어간다. 지훈과 함께 살았던 1년이 가장 좋았다든지, 여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애인이 있다고 돌려 답한다든지. 숨기는 것이 있는 지훈은 결국 저녁식사 자리를 잠시 뜨기까지 한다. 그저 불안하기만 한 감정은 아니다. 태일이 애인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지훈은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의 표정에서는 태일이 그처럼 성정체성을 숨기고 일반적인 결혼을 하는 것인지, 사랑했던 과거의 그들을 이제는 잊은 것인지, 지금 찾아와서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 여러 의문과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자신은 이런 결혼을 했지만 태일은 그러지 않길 바랐던 믿음과 배신감도 오묘하게 섞여있는 듯하다. 하지만 결국 태일을 통해 진정한 본인을 숨기고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가장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식사를 마친 뒤 야외에서 둘만의 대화를 나누며 태일이 건넨 청첩장에는 생각지도 못한 글자들이 적혀있다. 태일은 지훈처럼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약속했다. 누군가의 장녀와 누군가의 차남이 아닌 장남과 차남의 결혼. 지훈은 이루지 못한, 이뤄주지 못한 가정의 형태를 태일은 스스로 이뤄나간다. 태일은 지훈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웃으며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하지만 지훈은 대답하지도, 태일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한다.



이름을 부른다는 행위는 쉬운 것 같지만 생각보다 숭고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저 호명의 용도가 아닌 이름으로써 인식되고 존재를 증명받을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 그러했듯, 영화 <Call Me By Your Name>에서 그러했듯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진심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랬기에 지나온 순간과 나아갈 순간에 떳떳한 태일은 지훈을 불렀지만 지훈은 태일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 내가 부를 이름은 누구이며, 내 이름을 불러줄 이는 누구일까.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


** 영화 <그 이름>은 왓챠와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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