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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03. 2023

사랑을 넘어선 사랑, 불륜

영화 <불륜> - 김준성 감독 


힘겹게 계단을 오른 할아버지가 누군가를 애타게 부른다. “어이~!” 그러자 건너편 동네에서 누군가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반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가져온 고장난 라디오를 고쳐주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마실 것을 내온다. 두 사람은 마치 연애를 갓 시작한 20대 커플처럼 풋풋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도 잠시 또 다른 누군가의 부름에 할아버지는 몸을 숨기고 할머니는 어쩔 줄 모른다. 영화의 제목처럼 불륜 관계라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들키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초반부 누군가 내놓은 고장난 라디오에서는 독거노인과 관련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독거노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복지단체 공무원을 등장시킴으로써 그들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남자 공무원은 기초생활수급자 제도를 악용하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하며 묘하게 할머니에게 눈치를 준다. 이들이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불륜 관계가 아닌 또 다른 제도적 문제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공무원이 되돌아간 후 할아버지의 아들로 추정되는 남자가 전화를 걸어오고 다시 기초생활수급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할아버지의 아들은 할머니의 아들이기도 했다. 부양을 해야 마땅할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지 못해 피부양자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혼 관계로 법적 독거노인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제도에 의해 윤리에 어긋나는’ 사랑이었다. 서로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불륜’ 관계.



라디오에서 시작해 공무원의 입을 통하고 아들의 입으로 이어지는 독거노인과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들의 이야기. 할머니를 의심하는 공무원도, 부모의 부양을 포기한 자식도 비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제도 자체로 눈을 돌려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고장난 라디오를 수리할 생각은 없이 새 라디오를 사면 된다던 공무원처럼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당장의 문제를 덮어 해결할 방안 찾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더 깊어지는 사회문제 속에서 수리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단한 시간들 속에서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는다. 맛있는 반찬을 얹어주고, 다리가 불편함에도 휠체어를 밀어주고 태워주며 산책을 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식을 줄만 알았던 사랑이 그들을 통해 여전히 따뜻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좁고, 언덕진 달동네와 비탈진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사랑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시대의 아버지, 어머니로 대변되는 신구, 김지영 배우님의 연기가 참 와닿은 작품이었다. 2012년 작품이면 10년도 더 지난 작품인데 여전히 저 당시 말했던 문제는 지속되고 있고 어쩌면 더 깊어진 것 같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게 다가왔다. 아직도 우리는 고장난 라디오를 고치지 못하고 있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


** 영화 <불륜>은 왓챠와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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