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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07. 2023

두 세계의 만남

영화 <블루 그레이> - 김상아 감독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우정, 동지애, 사랑 등-을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이라고 표현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두 세계의 간극은, 두 사람이 나고 자란 환경의 차이에 비례한다. 이 거리는 감정의 특수한 계기를 통해 가까워지고 접합한다. <블루 그레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작품은 색깔을 통해 남녀의 다름을 나타낸다. 구체적인 공간성과 결합되면서 말이다. 지호가 살던 뉴욕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블루’로, 문식이 살고 있는 서울은 무미건조한 ‘그레이’로 은유된다.          


          

어머니는 뉴욕에서 돌아온 지호에게 선 볼 것을 요구한다. 일단은 응한 지호지만, 내키지 않는 맞선이 불편하고, 지나치게 모범생 같은 문식에게 퉁명스럽게 대한다. 만남이 끝나려는 순간, 문식이 지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을 지호가 가는 술집(LP바)에 데려가달라는 것. 그에겐 지호 이후에도 선 자리가 있는데, 그곳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이를 들은 지호는 우리는 앞으로 볼 일이 없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문식의 부탁을 승낙한다.          


       

어색함이 감돌던 둘 사이는 노래를 통해 한층 편안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친밀감을 느낀다. 술을 마시고 떠들던 지호는 동전의 한 면이 나오면 서울에 남는 쪽을, 다른 한 면이 나오면 뉴욕으로 되돌아가는 쪽을 택하겠다며 10원짜리 하나를 테이블에 던진다. 지호는 서울에 남게 되고, 문식과 한강에 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문식과 지호는 선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비밀과 약점을 조심스레 꺼내고, 지호는 아까 던진 동전이 행운의 징표라며 건네주고는, 자연스레 헤어진다. 그런데 갈 길을 가던 지호가 뒤를 돌아본다.              


합쳐지지 못할 것 같았던 ‘블루’와 ‘그레이’는 우여곡절 끝에 ‘블루 그레이’가 된다. 서로 너무 다르지만, 그 다름에서 비롯되는 많은 이야깃거리, 솔직하게 털어놓은 약한 (멋지지 않은) 모습들이 되려 둘을 섞어놓는 붓이요 팔레트가 된 것이다. 뉴욕의 ‘쿨함’을 예찬하며 서울의 칙칙함을 맘에 들어 하지 않던 지호는, 회색이야말로 검정색과 흰색 사이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며 생각을 바꾼다. 상대방이 너무 좋아서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을 긍정하고 마는 일. 그게 사랑의 힘이 아닐까.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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