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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07. 2023

독박 육아 여성의 어떤 하루

영화 <독박> - 이가영 감독

단편영화 <독박>은 지홍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며 시작한다. 그녀의 품에는 아직 걸음을 떼지 못한 갓난아기가 안겨있다. 지홍은 아기를 안고 어딜 저렇게 바삐 가는 걸까. 영화의 다음 장면은 아기의 모빌이 돌아가는 조용한 거실을 비춘다. 지홍은 밤새 칭얼거린 아이를 겨우 재운 뒤 찾아온 평화를 만끽하는 중이다. 그때 협탁에 놓인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지홍의 남편이다. 남편은 지홍에게 자신이 맡은 사업과 관련된 중요한 서류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한다. 집에 두고 간 것 같으니 자신을 대신해 서류를 찾아봐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남편의 목소리는 그것이 마치 지홍의 부주의 때문이라는 듯 짜증으로 가득하다. 서류는 프린터기 안에서 발견된다. 남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홍에게 서류를 회사까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지 않으면 1억 오천만원을 자신이 물어줘야할 판이라면서.       


 

그렇게 30분밖에 남지 않은 두시까지 지홍은 난데없는 레이스를 시작하게 된다. 지홍의 품에서 떨어진 아기가 뒷좌석에 세차게 울기 시작하고 운전과 동시에 분유를 타던 지홍의 손은 미끄러져 차 안은 엉망이 된다. 심지어 때마침 걸려오는 장모의 전화는 지홍의 남은 혼을 쏙 빼놓는다. 그리하여 도착한 회사. 놓친 엘리베이터를 대신해 아이와 함께 계단을 오르는 지홍은 이상한 냄새까지 감지한다.      


    

바로 지홍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대변을 본 것. 하지만 지홍은 남편에게 무사히 서류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가쁜 숨을 내쉬는 지홍으로부터 서류를 받은 남편은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무엇 때문일까. 설마 지홍이 서류 중 일부를 집에 두고 온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오는 찰나 남편이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눈곱 좀 떼라”      

그 순간 지홍이 실수한 것이 아니라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온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인사가 아닌 눈꼽 좀 떼라는 남편의 말은 1억 5천 만원을 배상해야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숫자에서 오는 공포는 아니지만 가늠할 수 없는 무지에서 오는 아득한 공포를 선사한다.      


   

영화 <독박>은 지홍이 남편의 서류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전쟁과도 같은 하루를 따라간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지홍은 남편 회사 앞에 세워놓은 차가 견인되고 사라지고 없는 것을 발견한다. 남편은 바이어와의 미팅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그를 자신의 차로 모시려고 한다. 그때 자신의 차 유리창에 던져진 똥기저귀를 발견한다.      


  

지홍은 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걸어간다. 아이는 좀 전까지 지홍과 함께 겪은 일을 모두 잊었다는 듯 새근새근 잠에 들어있다. 지홍 말고는 오늘 있었던 그녀의 하루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히 더럽게 운 없는 지홍의 하루를 묘사한 영화 정도로 오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돌봄과 육아 노동의 여성으로의 독박이 여전한 대한민국의 사회를 꼬집는 단편영화 <독박>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수


** 영화 <독박>은 왓챠와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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