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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10. 2023

아무도 번개에 맞지 않으면 좋겠다

영화 <번개가 떨어졌다> - 김지홍 감독


불행은 마치 번개처럼 갑작스럽게 닥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여기 이 남자도 떨어지는 번개에 맞았다. 번개에 맞고 7~8년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 1년 전쯤 깨어났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는 계속 묻지만, 벼락 맞은 것의 인과관계를 찾을 수 있을까.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벼락에 맞고 쓰러져 있기보다 마주하고 이겨내려 한다. 



남자는 역할대행 업체를 통해 누나 역할을 대행해줄 사람을 구한다. 남자는 대본을 짜와 여자와 역할극을 통해 누나와의 추억을 되살리고자 한다. 하지만 남자가 요구한 역할은 친누나가 평소에 보여줬던 모습도 아니며 보수에 비해 큰 힘이 드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집에 있으며 자신의 대본에 충실하길 바란다. 그들이 진짜 남매처럼 지내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남자의 대본은 점점 번개에 맞았던 그 날로 가까이 가게 된다.



남자는 여자에게 그의 가족들 이야기를 해준다. 가족들의 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꽃향기가 나는 물컹한 엄마의 손. 담배 냄새가 나지만 부드러웠던 아빠의 손. 핸드크림 때문에 미끌거렸지만 가늘었던 누나의 손. 하지만 이내 그 손들은 점점 구별가지 않고 그저 거칠고 따가운 손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다. 남자의 가족들은 헌신하여 그를 돌본 듯하다. 지난 날 누워있던 병상의 모습을 재현하는 그에게 여자는 이제 역할극은 그만두고 깨어난 사람대로 살라고 말한다. 그런 그녀에게 그는 마지막 대본을 부탁한다.



마지막 대본에서는 그의 과거와 벼락맞은, 그에게 덮친 불행의 전말을 어렴풋이 보여준다. 그의 가족들은 그의 몸에 욕창이 생길 새라 온 손이 거칠어지도록 간병을 하는 와중에 그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벼락같이 몸을 던졌던 사람은 결국 다시 벼락같이 떨어졌다. 불행의 원인도 찾지 못한 채 원망할 곳도 없이 8년이라는 세월을 버텨내는 가족들도 서서히 지친다. 그리고 가늘고 매끄러운 손을 가졌던 그녀의 누나는 그에게 어쩌면 벼락보다 더 상처가 되는 말을 뱉는다. 들리지 않는 줄 알았던 그가 듣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리고 여자는 이 모든 대본을 재연한다. 남자는 조용히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린다.



불행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불행의 원인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불행을 마주한 사람은 잊기 위해서든, 벗어나기 위해서든 겪은 일을 마주해야 한다. 영화 속 남자는 여자와의 재연을 통해 그의 불행을 제대로 마주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에서 남자는 가족에게로 돌아간다고 했다. 내내 벼락 맞은 날처럼 어둡던 화면에 햇빛이 들어선다.



영화가 진행되며 벼락이라는 소재로 불행을 이야기하는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이를 둘러싼 연출들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1:1로 느껴지는 화면비부터 인물들 위주의 클로즈업 씬들. 회색빛의 춥고 건조한 색감 사이를 뚫고 나오는 웃음 포인트들까지. 극 초반 두 사람이 화면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중앙에 위치하는 점에서는, 소통을 통해 마음이 열리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극 후반의 피아노 곡은 이들의 연극에 더욱 몰입하게끔 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렵더라도 매력적인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번개가 떨어지는 날이면 생각날 것이다. 오늘 누군가 이 번개에 맞지 않길 바라며.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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