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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10. 2023

원인불명의 가려움

영화 <등에> - 김경래 감독


 <등에>는 10분 남짓의 초단편 영화다. 2016년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 출품작으로, 가려움을 호소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칠듯한 가려움에 시달리는 남자. 그는 답답한 심정에 새벽에 집에서 나와 거리를 배회한다. 그러고는 어느 청년들을 향해 천원권 지폐 한 장을 건네며 등을 긁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청년들은 이 남자가 술에 취한 건 아닐까 생각하며 웃어대지만 남자는 진심이다. 그는 가려움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한다.



 남자의 의중을 몰라주는 무심한 청년들이 떠나가고, 남자는 벤치, 나무, 심지어 공룡 모형에까지 등을 기대고 비벼댄다. 너무 강하게 문질러서 아파하기도 하고, 상처는 더욱 심해지지만, 남자는 쉽사리 이 기이한 행위를 중단할 수 없다. 남자는 등이 너무 가렵고, 그 가려움과 끝장을 보고자 이슥한 밤에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마음을 먹은 남자는 끊임 없이 원인불명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분투한다.



 거리에서 일출을 본 남자는 지친 몸을 잡아끌고 귀가한다. 그러고는 그대로 마룻바닥에 엎어져 쓰러진다. 무척이나 피곤했는지, 계속해서 울려대는 현관 벨소리는 듣지도 못한 채, 침까지 흘리며 잔다. 그가 가려움증을 해소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남자는 자신을 둘러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이라도 쳐봤다는 사실이다. 


 작품에서 남자가 겪는 가려움증은 다양하게 바라볼 여지가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소외일 수도 있고, 타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고충일 수도 있다. 아주 짧은 러닝타임과 이해를 돕는 각종 장치의 부재 덕에 작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필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보자면, 가려움증으로 비유된 개인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의 불가해성을 꼬집고 있다고 생각된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고, 그 원인도 알 수 없다. 그것이 세상의 끔찍함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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