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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21. 2023

사계절 지나 너 없는 계절

영화 <다섯 번째 계절> - 양경희 감독


두 여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마치 웨딩사진 같다. 한 여자는 주변을 계속 인식하고 다른 여자는 이에 화가 난다. “네가 자꾸 이러니까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잖아.” 그제야 상대에게 미안함을 느낀 여자는 어색하게나마 다른 여자의 팔에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는다. 날씨 좋은 날, 푸른 공원에 예쁘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으러 온 두 사람이지만 표정은 밝지 않다. 은하와 서우, 두 사람은 10년 된 동성커플이다.



어느 날 은하는 서우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간다. 은하는 이를 서우의 부모님에게 전한다. 서우의 부모님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것을 앎에도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서우가 의식이 없는 틈에 두 사람이 살던 집에서 짐을 빼고 방을 내놓기까지 한다. 특히 서우의 아버지는 은하의 존재조차 달갑게 생각지 않고 병원에 오는 것도 꺼린다. 그나마 우호적이었던 서우의 어머니마저 아버지의 태도를 이기지 못하고 은하에게 병원에 오지 말 것을 권한다. 순식간에 은하는 연인과 마주할 수 없게 된다.



의식이 없는 서우를 뒤로 하고 은하는 과거의 그들을 떠올린다. 수줍었던 첫만남부터 동거의 시작, 기분 좋은 스킨십. 행복했던 과거에 그녀는 더욱 괴롭다. 한편으로는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기억들도 떠오른다. 동성커플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지냈어야 했다. 특히 서우는 커밍아웃을 했지만 은하는 그렇지 않은 상태로 직장을 다녔고 자연스레 이런 차이에 있어서도 갈등은 생겼다.



행복했던 과거, 더 잘해줄 걸 이라는 죄책감, 그리고 이제는 이전처럼 만날 수 없게 된 여자친구.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은하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 서우가 없는 삶은 은하에게 다섯 번째 계절일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계절이자 존재하지 않는 계절이다. 그녀가 언제 다시 봄을 맞이할지 모르겠지만 다섯 번째 계절이 부디 너무 길지는 않길 바란다.



은하와 서우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마냥 행복할 수도, 서로가 함께하는 오랜 미래를 그리기도 어려웠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부모님조차도 그 사실을 알지만 모른 척, 부정해오기만 했다. 사랑의 존재조차 부정받는 그들이 사랑만 가지고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동성커플임에도 한 사람은 커밍아웃을 하고, 한 사람은 정체성을 숨기는 상황에서 동등한 위치에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누군가는 불만일 것이며 누군가는 부담이었을 것이다. 사회와, 가족과, 연인 사이 모두가 두 사람에게는 짊어져야 할 일이었다. 영화 속 상황으로 꾸며진 것이 아닌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불안하고 불편했던 그들의 이야기였다.



퀴어 영화 속 해피엔딩은 드물다. 그리고 레즈비언 커플에게는 더욱 어려워보인다. 퀴어와 BL은 엄연히 다른 장르이지만, BL 장르가 게이 커플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퀴어를 주제로 한 미디어에서 게이 커플은 종종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레즈비언 커플은 여전히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다. 분명 우리 곁에도 그들은 존재할텐데 미디어에서조차 볼 수 없는 모습에 때로 아쉬움을 느낀다. 동성애를 존중해달라는 의미뿐만이 아닌 그저 이런 사랑도 있다는 것을 더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는 사회가 천천히 다가오길 바라본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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