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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Feb 14. 2023

가장 완벽한 소음으로부터

영화 <달세뇨> - 고성욱 감독

우리는 특정 소리를 계속해서 찾아내면서도, 특정 소리를 막아내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의 귀로 들리지 않는 소리를 찾는 기술과 사람의 말소리를 막는 기술과 함께하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듣고 싶은 소리만 듣기를 원한다. 내 바로 옆 사람의 소리일지라도 그것이 내가 원하는 소리가 아니라면 소음으로 여기고 차단하는 세계에서 산다.


영화 <달세뇨> 중


이런 니즈가 반영된 기계를 통해 살아가는 사람이 여기 있다. 바로 <달세뇨> 속 태엽이다. 태엽은 가까운 미래 도시에 사는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뮤터’라는 기기를 통해 듣고 싶은 소리만 들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가 듣고 싶은 소리는 피아노 소리뿐인데 어느 날 이웃집 피아노 소리가 들리게 되고 이는 주파수 변형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 <달세뇨> 중


그는 조용히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으로 딸과 함께 바닷가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하지만 오두막은 그가 피하고 싶었던 소음의 중심지였다. 기차가 지나가고, 공사가 진행되는 듯하고, 바닷가의 파도 소리도 쉴 새 없이 들려온다. 하필 그의 딸 보람이 그의 뮤터마저 고장을 낸다. 태엽은 말썽부리고 소음을 자아내는 딸에게 화를 냈고 딸은 사라져 버린다.        

 

영화 <달세뇨> 중


딸의 소리도 ‘뮤트’하고 살아온 그는 딸을 찾기 위해 그녀의 소리를 ‘언뮤트’하게 된다. 딸을 찾은 태엽은 다시 딸의 소리를 ‘뮤트’하지 않는다. 그러자 딸에게서 흘러나오는 모든 소리가 들린다. 딸의 숨소리, 뱃속에서 나는 소리, 딸이 치는 실로폰 소리도 모두 들린다. 그 소리들은 소리를 막아왔던 세월이 무색하게 생각보다 거슬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치는 피아노 소리만 듣고 살아온 그는 이내 자신의 연주에 딸의 연주를 받아들인다.     


영화 <달세뇨> 중


딸의 모든 소리를 받아들인 아빠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빛나는 조명보다, 웅장한 자연의 소리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눈맞춤과 합주가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영화 <달세뇨> 중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귀 기울이며 친절을 베풀더라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귀 기울이지 않곤 한다. 한 쪽의 단절은 결국 쌍방의 단절을 이끌기도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계속해서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영화에서는 그 역할이 딸 보람이었다. 보람은 아빠의 무관심에도 피아노 소리에 맞춰 박자를 두드리고, 아빠를 따라 한숨을 쉰다. 결정적으로 소리를 차단하는, 소통을 차단하는 뮤터를 고장내기도 한다. 보람은 포기하지 않고 아빠에게 다가간다. 결국 아빠가 그었던 선을 넘고 그 옆자리에 앉는다. 소음의 집합체인 줄 알았던 그녀는 그 어떤 소리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소리를 건넸다.    


영화 <달세뇨> 중


‘달 세뇨’. '표가 있는 곳으로부터'라는 뜻의 음악 기호이다. 이것이 붙어 있을 때는, 그곳에서 세뇨 표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 연주를 되풀이해야 한다. 태엽에게 달 세뇨와 세뇨는 ‘완전하지 않은 무음의 세계’였을까. 소음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피아노 연주를 되풀이한다. 무음의 세계를 향해 연주를 이어나가고 싶지만 악보에 따라 그는 결국 소음의 세계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가 모든 소리를 받아들였을 때 그는 가장 완벽한 연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건너뛰고 피하고 싶은 순간들을 마주할 때 삶이라는 악보가 지시하는 대로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달세뇨>는 짧은 러닝타임 속 신선한 소재와 아름다운 선율이 조화를 이루는 영화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악보와 우리가 만들어내는 소리들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    

영화 <달세뇨> 중

딸의 뱃속 소리를 듣게 된 태엽은 보람이 변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에게 변비약을 구해 변비로부터 딸을 구출한 그가 마지막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장면은 정말 사랑스럽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


** 영화 <달세뇨>는 네이버 시리즈온, 티빙, 왓챠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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