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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Feb 17. 2023

하루와 현도의 백일몽(白日夢)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 박형남 감독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은 한예종 학생들의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출품작이다. 뮤지컬 영화로, 여고생 ‘하루’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며 꿈에 대해 노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이윽고 등장하는 남학생 ‘현도’ 역시 꿈을 이야기한다. 어쩐지 풍경이 낯익다 했더니, 한예종이 위치한 석관동이다. 도봉구, 강북구, 성북구 등지에 살았고, 동대문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필자로선 아주 익숙하다.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그녀의 꿈은 해적선장이다.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언제인가, ‘고3’이 지극히 한국적인 생애 단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슷한 것으로 ‘군대’가 있다) 수능을 위해서 경찰차까지 출동하는 나라.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대입이 차지하는 위상의 방증일테다. 성적표를 보며 심란해 하는 학생과는 대조적으로 천진난만한 하루와 친구들.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그러나 그녀의 꿈은 현실 앞에서 너무나 쉽게 바스라진다. 영락 없는 모범생의 외양을 한 학급회장이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전달한다. 방과후에 남으라. 이유는, 진로희망 칸에 ‘해적’을 기입한 죄(?). 그만큼의 중범죄는 아니지만, 현도 역시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하루와 함께 남게 됐다.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친구들의 장난 섞인 비아냥이 쇄도하지만, 하루는 진심이다. 당당하게 해적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말한다. 범상한 급우들은 몽상가 하루를 이해할 수 없다.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불가능한 꿈처럼 보이지만 하루의 청사진은 나름 구체적이다. 해적의 분필로 파란 칠판에 그려낸 해적의 꿈. 그런 해적이 되고 싶다는 하루에게 전투적 현실주의자 선생님은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장래의 진로로 추천한다.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같은 시각 현도의 방과후 상담도 이뤄지고 있었다. 희망 진로를 적어 내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는 현도. 하루가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하고, 둘은 이슥한 밤에 만난다.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사실 현도에겐 꿈이 있었다. 그것도 단 두 어절로 축약가능한. 바로 ‘영화’/‘감독’. 현도는 자신의 꿈을 ‘수많은 가로등 중에 홀로 하얗게 빛나는 하나’에 빗댄다. 홀로 되는 것은 힘들지만. 그래도 현도는 그 혼자됨을 꿋꿋이 이겨낼 것이라고 노래한다.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이들의 꿈은 종이배로 표상된다. 그러나 너무 작은 배. 종이배를 어떻게 바다에 띄우냐며 현도는 핀잔을 준다. 하지만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하루와 현도는 정말 바다에 띄울 수 있을만한 큼지막한 배를 만든다.     


영화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 중


두 주인공이 ‘오늘과는 다를 내일의 나’를 노래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현실 논리에 가로막힌 듯 보였던 하루의 꿈은 미약하게나마 첫발을 디뎠다. 이제 하루가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가슴 속에 별과 같은 꿈을 품고 살아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은가. ‘쿨함’이 추앙받고 모든 형태의 낭만주의가 폐기처분 되는 이 차가운 시대에 말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 <구명조끼를 한 해적선장>은 네이버 시리즈온과 왓챠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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