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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동 May 18. 2023

06. 학교 끝나고 매일 뭐 하지?

제이든의 수영장 입성기

학기 초 어느 수요일 하교시간,

그날도 교실 앞에서 제이든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엄마 아빠들은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이야기하는 중이었고, 나는 멀뚱히 혼자 서서 교실 문 쪽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MBTI 앞글자가 'I' - 내향형이다. 하지만 보통은 내가 I 라고 말해도 사람들 잘 믿지 않는다. 결과를 직접 보여주고 상대가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다들 나를 전형적인 'E'성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사람들과 있을 때 노력형 E로 살아가며,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기도 하다.

(MBTI가 알려지진 이후 알파벳 하나로 내 성향을 쉽게 얘기할 수 있으니 좋은 것 같다)



"하이 니콜~, 하와유?"

등교 첫날 인사를 건네었던 '다이애나'가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엇,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네?'

그동안 하교시간에 다이애나를 잘 볼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다이애나는 워킹맘이어서 평소에는 아이가 방과 후교실을 가고, 수요일만 수업 끝나는 시간에 데리러 오는 루틴이었다.


다이애나는 제이든과 같은 반 친구 '팀'의 엄마다.

"제이든은 요즘 학교 끝나고 뭐 하나요?"

"아.. 지금은 아무것도 하는 거 없어요."

(학교 끝나면 둘이 바닷가에 가거나 놀이터에 가는 게 전부였다)

"팀은 수요일마다 수영장에 가는데 제이든도 관심 있으면 한 번 생각해 봐요~"

"아! 감사합니다. 그럴게요. 수영장 이름이 뭐예요?"

"GESAC이에요. 그럼 다음에 또 얘기해요~."


마침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뛰어나와서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났다.

'GESAC... 쥐 싹...... 까먹지 말고 찾아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얼른 휴대폰 노트에 적었다.

제이든과 같이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제이든, 학교 끝나고 만날 엄마랑만 노니까 심심하지?"

"응, 나도 친구들하고 놀고 싶어."

"그럼~~~ 제이든 수영장 다녀볼까?"

"......"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은 안 했지만 제이든이 호주에 오기 바로 전까지 어린이 전용 수영장을 다녔기 때문에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 주말 우리는 GESAC 사전답사를 갔다.

"우와아~~~~~~~~~~~~여기 진짜 재미있겠다. 엄마~~~. 나 지금 들어가서 놀아도 돼요?"

"아니, 오늘은 알아보러 오기만 한 거야. 언제 가능한지 물어보자."

쥐싹은 Glen Eira Sports and Aquatic Centre의 약자로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의 피트니스 센터였다. 사방이 통창이라 해가 잘 들어오고 아이들 놀거리가 있는 대형 실내 풀장과 야외 풀장이 있고, 그 외 구기종목, 필라테스 및 짐 시설도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이 아이가 수영장을 등록하고 싶은데요~"

직원은 가격표와 스케줄이 적혀있는 리플릿을 건네주며 빠르게 설명을 해주었다. 옵션도 많고 내용도 많아서 백 퍼센트 이해하지는 못해서 준비해 간 질문을 던졌다.

"혹시 등록 전에 체험레슨 같은 걸 할 수 있나요?"

내 기억에 trial class라는 말로 물어본 것 같은데, 직원이 Free assessment가 있다는 대답을 주었다.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무료로 레벨테스트를 한다는 뉘앙스를 듣고 그걸 하겠다고 대답했다.


수영장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으로 놀 수 있어 제이든에게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강습 후엔 풀장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한참을 놀다가 집에 가곤 했다.


한국에서 제이든도 자유형 - 배영 - 평영 순으로 수영을 배웠다. 호주에서는 수영을 배운다기보다는 '물에서 잘 노는 법'을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레벨 1은 안전하게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어야 하고, 레벨 2는 잠수해서 바닥의 물건을 줍거나 구조신호를 보낼 수 있어야 하는 등 아이들이 물과 천천히 친해지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제이든도 수영장 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Level 1. Platypus (Class Size 4:1)

Safe entry and exit

Monkey walk and exit from deep water

Face in and bubbles

Aided back float

Aided front float

Aided front kick for three metres

Aided backstroke kick for three metres


Level 2: Sea Turtle (Class Size 4:1)

Swim to wall independently in deep water

Submerge and pick up an object

Back float

Front float

Backstroke kick with board

Torpedo for three metres

Signal for help and be rescued


그렇게 제이든은 수영장에 등록했고 같은 반 친구 팀과 수영장을 함께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다이애나와 나는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강습을 받는 동안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좋은 친구가 되어갔다. 다이애나는 영국에서 이민을 왔는데 개학날 사람들 사이에서 낯설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예전 생각이 나서 말을 걸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이애나 가족과의 감사한 만남이 시작되었고 수영장을 다닌 이후부터 우리의 수요일 하교 후 일정은 '수영장 > 팀네 집에 가서 함께 저녁 먹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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