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동 May 21. 2023

07. 한국에서 선생님들이 오셨어요!

호주에서 만난 반가운 형님 누나들

제이든의 등교 전 복통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 고민인 날들이 계속되었다. 학교 가기 전에는 식은땀이 나고 아프다가, 하교할 때면 또 여느 다른 아이들 같이 웃으면서 뛰어나왔다.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하루에 거의 6시간 동안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환경에 놓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규모가 큰 학교는 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EAL(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클래스를 운영하지만, 제이든의 학교는 외국인 학생이 없었기 때문에 별도로 EAL 학급은 없었다. 


"제이든, 말이 안 통하니까 답답하지?"

"응 뭐 그냥 그래......"

"그래도 꼭 필요한 거 있음 한국어 선생님한테 찾아가면 되겠다 그치?"

"아~ 한국어 선생님은 매일 안 오셔 엄마. 그리고 나 한국어 쌤한테 한 번도 간 적 없어."

"그래? 아... 그럼 제이든 진짜 급하거나 꼭 말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해?"

"응, 한나 선생님이 아이패드 써서 한국어로 들려주셔."


나중에서야 알았다. 한국어 선생님이 매일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말 급한 일이 있으면 내가 없어도 한국어 선생님한테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오산이었다. 그리고 제이든은 말이 통하지 않을 때 한국어 선생님에게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눈치였다.


제이든 하교를 기다리던 어느 날 한국어 선생님을 마주칠 일이 있어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처음 입학했을 때 학교 측에서 사전에 한국어 선생님을 소개해 주어서 이미 서로 안면은 있는 상태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이든 엄마예요~ 제이든 수업 시간에 좀 어떤가요?"

"신나서 친구들한테 알려주고 아이들도 신기하게 바라보고 그래요."

"아 너무 다행이네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그런 시간이 있어서요."

"네~ 저도 제이든이 조교처럼 잘 도와줘서 좋아요~."


한국어 선생님께 제이든이 의사소통이나 아이들과의 놀이 방법에 익숙지 않아 좀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호주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을 소개해주셨다. 필요하면 제이든이 주말에라도 한국 사람들과 만나서 활동하면 어떨까 하여 알려주신 것 같았다. 호주에 있는 1년 동안 한국인과 교류하지 않고 현지에 녹아들어 보겠다는 결심을 했었지만, 우선 소개받은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보았고 선생님은 참으로 따뜻한 분이었다. 제이든과 내가 얼마나 힘들지에 대한 얘기를 듣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셨다. 그리고 빅토리아주 정부에서 아이가 언어 소통의 어려움이 있는 경우 필요한 기간만큼 수행 통역사를 지원해 준다*는 소식도 알려주셨다. 제이든이 어느 정도 간단한 말이라도 소통이 가능해질 때까지 도움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 제이든의 의견을 물었다.


"제이든,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학교 있는 동안 한국말하시는 선생님이 제이든이랑 같이 있어주실 수 있대."

"응? 우리 학교에 한국어 선생님 있잖아."

"아니, 학교 한국어 선생님 말고 다른 분이 제이든 학교 있는 동안 같이 있으면서 통역해 주신대~ 어때?" 

"나 학교에 있는 동안 계속 옆에 있는다고?"

"응, 맞아. 수업도 알려주시고 제이든 하고 싶은 말 있음 대신해주시기도 하고."

"음...... "

제이든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반응이 별로라 당황스러웠다.

"왜 제이든? 별로야?"

"......"

"그럼 좀 생각해 보고 알려줘."


통역사 인원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고 신청하면 바로 지원이 되는지도 몰라서, 가능하면 하루라도 빨리 신청하려고 다음날 다시 제이든에게 물었다.

"생각해 봤어 제이든?"

"엄마, 나 그거 안 할래."

7살 어린아이지만 깊이 고민한 눈치였다. 얘기를 나눠보니 제이든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지금도 아이들과 어울리기가 어려운데 통역사 어른과 같이 다니면 친구들과 친해지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제이든의 생각이었다. 내가 아이의 마음을 살피기보다는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심에 잘못된 제안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또 한편으로 제이든이 너무 대견했다.

"그래, 제이든. 그럼 엄마 그거 신청 안 할게. 우리 아들 혼자 잘할 수 있어. 멋지다!"

 


지하철에서 역무원에게 길을 물어보거나 식당에서 간단한 이야기를 하는 등, 제이든은 학교 밖에서 조금씩 말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해보라고 해도 극구 싫다고 하더니 이제 진짜 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여러 번 연습한 후에 시도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사진은 제이든이 제일 좋아하는 햄버거집에서 남은 감자튀김을 포장해 달라고 말하는 모습이다. 처음으로 내가 따라가지 않고 제이든이 혼자 가서 대화를 시도했던 상황이라 간직하고 싶어서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까치발로 서서 손을 들고 점원을 부르는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귀엽다.


어느 날, 지난번 한국어 통역사 이야기를 해주셨던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니콜, 이번에 한국에서 교육학과 학생들이 연수를 오는데, 제이든 학교로 가보게 되었어요. 제이든이 직접 대학생들에게 학교를 소개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와~ 너무 좋네요. 제이든이 엄청 좋아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제이든이 직접 학교를 소개하면 한국 대학생들에게도 의미가 있고 제이든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여러 번 감사하다 말씀드리고 날짜를 여쭤본 후에 제이든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제이든, 한국에서 선생님들이 호주에 뭘 배우러 오는데 제이든 학교에 오신대. 그럼 제이든이 학교를 구경시켜 주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지?"

"나보고 학교를 구경시켜 주라고?"

제이든은 눈이 동그래져서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눈치였다. 

"뭘 알려줘야 하는데 엄마?"

"아 그냥 제이든이 학교에 뭐가 있는지 보여드리면 돼."


"이 쪽으로 가면 닭이랑 토끼가 있어요~"                                              "여기가 한국어 교실이에요!"

"호주 학교에서는 식물도 키워요."                                       "여기서 그냥 수돗물을 마시면 된다니까요~"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수업이 끝난 시간에 인솔 선생님과 대학생 네 분이 방문했는데, 제이든은 이곳저곳 다니면서 학교의 구석구석을 보여드렸다. 수돗가에서는 실제로 물도 틀어 마시고 선생님들에게 마셔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본인도 신기했던 곳들을 소개드리고 싶었는지 부지런히 뛰었다가 걸었다가 하며 신나게 학교를 돌아다녔다. 감사하게도 학생분들 모두 제이든의 설명을 경청하고 열심히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셨다. 그분들 모두 지금 좋은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호주 빅토리아주정부 교육 관련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학부모-교사 면담 시 통역 서비스 제공한다는 내용은 있는데, 학생을 위한 통역사 지원에 대한 내용은 찾기가 어렵네요. 제가 직접 이용하지는 않았고, 2012년 당시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억에 의존하여 적은 점 감안하고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https://www2.education.vic.gov.au/pal/interpreting-and-translation-services/policy

이전 06화 06. 학교 끝나고 매일 뭐 하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