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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동 May 15. 2023

05. 콜 마이 맘 플리즈~

버거운 학교생활이 시작되다

"엄마, 배가 너무 아파서 학교 못 가겠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학교 갈 시간이 되자 제이든이 복통을 호소했다.


"화장실 가볼래?"

"화장실 갈 배가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지? 엄마가 배 좀 문질러 줄까?"


시간을 더 지체하면 지각일 테고, 지각을 하면 교실에 들어갈 때 더 시선이 집중돼서 제이든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 아프다는 아이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선다.







제이든의 등굣길. 차를 학교 주변에 세워두고 학교로 걸어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자기 몸집보다 더 큰 가방을 메고 고개를 숙인 채 학교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과연 내가 여기 오길 잘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답답했다. 이 사진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제이든이 이렇게 큰~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녀요~~'라고 웃으며 공유해 주었던 사진이지만, 정작 나에게는 막막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사진이기도 하다.









"제이든, 우선 학교에 들어가 보고 배가 계속 아프면 선생님한테 말해서 엄마랑 통화하게 해달라고 해."

"영어로 뭐라고 말하면 돼?"

"콜 마이 맘, 플리즈~라고 해. 제이든이 한 번 연습해 봐."


앞이 캄캄했다. 꾀병이 아니라 정말 식은땀을 흘리며 배가 아파하는 아이를 보며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나에게 해답이 없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호주를 괜히 왔나'라는 생각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찾아왔다. 어쩌면 아이보다 더 겁나고 당황한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제이든을 안심시켜 주고 보호해 줄 사람도 나뿐이었다.


"엄마, 나 진짜 학교 가야 돼?"

아이의 눈이 '엄마 구해줘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흔들렸지만 학교를 안 보내고 계속 끼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이든, 많이 아파?"

"응 엄마, 나 진짜 들어가기 싫어!"

짧은 순간동안 오만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무조건 들어가라고 할까? 아니야 그냥 집에 다시 데리고 갈까? 학교 하루 이틀 빠진다고 뭐 대수인가? 근데 앞으로 계속 안 간다고 하면 어쩌지? 그러다 내가 내린 결론은 - 우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학교는 들여보내자-였다.


"제이든, 엄마가 제이든 교실로 들어가고 나서 여기 학교 앞에 차 세워놓고 30분 동안 있을게. 정 못 견디겠으면 다시 나와. 알았지?"

"응, 엄마 꼭 여기 있어야 돼!"

"당연하지, 걱정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

"그리고 엄마가 점심시간에도 다시 학교에 올게. 조금만 있다 다시 만나자"


그렇게 제이든을 학교로 겨우 들여보내고 30분 동안 차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7살 아들보다 내가 더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제이든이 다시 학교를 나오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나도 아이를 데려다주고 눈썹 휘날리게 학교를 가야 겨우 지각을 면하는데, 30분을 있다가 가면 1교시가 한참 진행되는 중간에 강의실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다시 아이의 점심시간에 맞춰 초등학교로 들어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내 수업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제이든은 좋아하지도 않는 크로와상 햄 샌드위치를 먹는 둥 마는 둥 (참고로 제이든은 찐 한식파)하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면 너무 반가워하면서 뛰어왔다.


"엄마~~~~~~~"

"제이든~~~~~"


4시간 남짓 지났을 뿐인데 이산가족 상봉하듯 만나서 점심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렇게 아침에는 학교 밖 차 안에서 30분간 기다리고, 점심시간은 제이든 학교로 들어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헤어지는 일상이 며칠간 이어지고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엄마~~~~~~"

하교하는 Jaden은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교실을 나오다가 나를 발견하면 해맑게 웃으며 뛰어왔다. 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며 꼬옥 안아주었다.

"제이든, 오늘 어땠어? 괜찮았어?"

"응 뭐 그냥 그랬어."

"그래 얼른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제이든의 가방을 받아 들고 돌아서려는데 담임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니콜~"

한나 선생님이 제이든에게 스티커를 하나 주며 시선을 돌렸다. 나에게 뭔가 할 얘기가 있는 눈치였다. 심장이 마구마구 뛰었다. '무슨 일이지... 제이든에게 무슨 일이 있나, 선생님 말이 빠른데 내가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어색했다. 하지만 다행히 한나 선생님은 매우 따뜻하고 웃음이 예쁜 사람이었다.

"한나, 안녕하세요~."  

"점심시간마다 학교에 온다고 들었어요. 제이든이 걱정돼서 오는 것은 이해하지만, 학부모도 학교에 들어올 때는 미리 방문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해요."

"아 너무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알고 보니 점심시간일지라도 학교 운동장에 나처럼 불쑥불쑥 들어가면 안 되고 미리 방문 신청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전 방문 등록을 한 경우, 안내 데스크에 들러 학교에서 제공하는 조끼를 입고 교내로 들어가는 프로세스가 있는데 전혀 모르고 학교를 들락날락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학교를 보내본 경험이 없었던 내가 그 사실을 알리가 없었고, 수업 중이 아닌 점심시간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날 이후 점심시간에 학교를 들어가는 것이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제이든에게도 충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제이든, 원래 학교에 엄마가 막 들어가면 안 되는 거래. 대신 점심시간에도 학교 밖 차 안에 엄마가 있을게."


그렇게 아침 30분, 점심 30분 차 안에서 제이든이 나올까 봐 걱정하며 기다리는 동안 남몰래 많이 울었다. 잘 놀고 있는지 걱정이 돼서 학교 펜스 밖에서 제이든 얼굴이라도 보려고 휴대폰 카메라 줌을 최대한 당겨서 보곤 했다. 그때만 해도 제이든은 스스로 상황이 파악되기 전에는 행동하지 않고 지켜보는 성향의 아이였다. 놀이터에서 혼자 있거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자면 가슴이 미어졌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그때를 떠올려도 눈물이 나지 않지만, 이후로도 몇 년 동안 그 기억은 나의 눈물 버튼이었다.


혼자 모래를 가지고 놀거나,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제이든과 그 모습을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가 떠오른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고 제이든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바로 등교 첫날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제이든의 이름을 물어봐주었던 엄마 '다이애나'의 아들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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