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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동 May 24. 2023

08. 제이든 형아, 내집에 놀러와~

호주에서 만난 반가운 한국인 가족

"제이든 얼른 씻고 가야지~~~"

수요일, 수영을 마치고 팀 네 집에 가는 날이다.

가는 길에 치킨과 감자튀김을 사서 다이애나가 집에서 삶은 완두콩과 브로콜리 같이 먹는 것이 우리의 수요일 저녁 루틴이었다.


팀네 집에 가면 팀의 아빠 로버트와 사랑스러운 강아지(대형견이긴 하다) 오반과 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아준다.

"하이, 로버트~"

호주에서는 친구를 만났을 때 볼 뽀뽀를 한다. 볼을 서로 대고 소리만 "쪽~"하고 내는 식이다. 처음에는 수염 난 얼굴이 많이 어색했는데 좀 익숙해지는 것도 같다.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팀, 제이든, 오늘 학교에서 뭐가 제일 재미있었니?"

"오늘 한국어 시간에 제이든이 말하는데 신기했어요."

"제이든, 너는 오늘 어땠니?"

"재미있었어요."

저녁식사의 첫마디는 항상 로버트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럼 아이들은 저마다 있었던 일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물론 초반에는 제이든의 영어가 짧아서 대부분은 팀이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다이애나, 로버트 부부는 늘 제이든이 말할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 한국에서는 아빠의 귀가가 늦어서 가족 모두가 저녁을 먹기가 어려운데, 호주에서는 온 가족 저녁 식사가 일상이라 참 좋아 보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차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 다이애나가 물었다.

"니콜, 이번 주말에 뭐해요?"

"아 특별한 계획 없어요."

"그럼 우리 집에 놀러 올래요? 내가 우리 병원에 있는 한국인 동료 의사도 초대했어요."

"네? 아...... 그럴게요"


긁적긁적 머리를 긁다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뭔가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이애나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서 수긍했다.



다이애나의 직업은 Radiologist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분야라 잠시 부연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은 전문의가 본인 분야의 초음파를 직접 보지만 호주는 전문적으로 초음파를 보는 의사가 따로 있다. 내가 경험해 보니 여성이 부인과 진료를 보는 경우, (1) 가정의학과 주치의 (General doctor)에게 가서 소견서를 받고 (2) Radiologist가 있는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본다. (3) 그 결과를 가지고 다시 주치의 병원에 가서 간단한 처치나 약물치료면 거기서 상황 종료, 추가 전문 진료가 필요할 경우 (4) 주치의가 소개한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가는 식이다. 나의 주치의가 있어 전체적인 건강상태를 지속적으로 체크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좋지만, 정형외과나 산부인과 등 전문의를 만나러 가기까지 절차가 많아서 외국인 의사를 계속 만나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많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빠르게 약속한 주말이 되었다.

"띵똥~"

"니콜~ 제이든~ 어서 와요~~"

"다이애나,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팀~ 잘 있었어?"

잠시 후 다이애나의 한국인 동료 제나(가명) 언니와 아들 쌔미(가명)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니콜이에요. 지난달에 여기 아들하고 둘이 왔어요."

"어머 안녕하세요. 이렇게 병원 동료 통해서 한국사람 소개받을 일이 없는데 신기하네요. 반가워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나언니도 한국사람들과 교류를 딱히 즐겨하지 않는 편이었다. 때문에 다이애나의 초대에 응할지 말지 살짝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잠깐 와서 인사만 하려고 점심 먹은 이후 티타임으로 약속 시간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해주셨다.


제이든보다 2살 어린 쌔미는 당시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많은 귀여운 남자아이였다. 나도, 제나 언니도 다이애나를 생각해서 어찌 보면 썩 내키지 않는 자리에 나왔는데 같이 얘기하다 보니 언니와 더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제이든과 쌔미는 같은 성씨였다. 다이애나와 함께 있으면 영어로 얘기를 하다 보니 대화에 한계가 있었다. 언니와 조금 더 편하게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언니도 내 진심이 느껴졌는지 언니 집에 잠깐 들르겠냐고 제안을 해주셨다.


쌔미도 제이든이랑 노는 것이 재미있는 눈치였다.

"제이든 형아~ 내집에 가자~" (쌔미는 호주에서 태어나서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편하다)

"응? 너네 집? 엄마~ 어떻게 해?"


"제나 언니, 진짜 그래도 돼요?"

"그럼요, 잠깐 가서 얘기 좀 더 하다가 가요."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누군가와 편안하게 몇 시간 동안 마주 보며 이야기해 본 것이. 한국에서는 뭘 했는지, 호주에 오게 된 계기, 와서 집 구하고 학교 간 얘기, 그리고 제이든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매일 점심시간에 학교에 가다가 규정상 안된다는 걸 알고 학교 앞 차 안에서 기다리던 얘기...... 그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이고.. 니콜 많이 힘들었겠네... 그래도 혼자 그렇게 해내는 게 대단하다."

"하아... 저 이렇게 얘기라도 하니까 너무 좋아요."


제이든도 오랜만에 한국어가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니까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제나언니는 제이든에게도 이것저것 물어봐주며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제이든,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뭐 해?"

"아, 그냥 혼자 놀 때도 있고 애들하고 놀 때도 있어요."

"친구들하고는 잘 놀아?"

"저번에 어떤 애가 제 엉덩이를 발로 차서 저도 발로 차 줬어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제이든의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앞으로 조금씩 좋아지는 일만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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